1부. 수학 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며

< 첫 부임지에서의 교사 생활(2) >

by 육아하는 수학교사

나는 교직 2년 차에 인생 일대의 가장 큰 일을 겪었다. 바로 결혼! 수년 전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만났고, 임용이 될 동안 1년간 뒷바라지한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으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였다. 아마 나의 교직 생활의 시작을 있게 해 준 가장 큰 원동력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였으리라. 2012년 3월. 나에게는 그 결혼식 날이 잊히지 않는다. 교직 2년 차에 맡은 새로운 1학년 우리 반 학생들은 전년도 학생들에 비해 순수함을 많이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 작은 항구마을을 고향으로 살고 있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우리 반 학생들은 사랑에 목말라했고, 서툴지만 사랑을 표현해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첫해에 비해 오히려 학생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고, 아이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결혼식에 대해 안내하고, 결혼 이후 신혼여행을 떠나야 해서 특별휴가로 일주일가량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우리 반 아이들은 기꺼이 축하를 해주었고, 일부러 나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춤이라도 춰주려고 하였다. 나는 아이들이 나의 결혼식에 대동되어 결혼식의 한 과정이 되는 것이 싫었던 터라 정중히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그런 참여가 하객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교사로서 잘살고 있다고 자랑이나 하는 모습처럼 보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학생들의 담임을 향한 그 순수한 뜻은 알겠으나 내가 조금 부끄러워 그랬을지도 모른다. 교직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아직은 많이 부족한 교사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아쉬움이 가득했는지 우리 반 아이들 몇몇은

“선생님 결혼식에 가서 뷔페 먹고 싶어서 꼭 가고 싶어요!!!”

라는 말을 남기며 억지로라도 나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려는 마음을 내 비췄다.

나의 결혼식은 대구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경주 바닷가 시골 항구마을에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불편하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학교 교복을 입고, 쉬는 주말에 나의 결혼식장인 대구까지 찾아오기엔 학생들에게 너무 먼 거리고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나는 학생들에게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으나 꼭 오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 비췄다.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허락은 하였지만 오고 가며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도 되었고, 설마 진짜로 오겠어? 하는 생각에 반신반의하였다. 하지만 결혼식 당일 나에게 실제로 찾아와 축하를 해준 그 학생들의 모습은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엔 순수함을 지닌 시골의 17살 여고생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결혼식에서 하나의 공연까지 해주려던 학생들께 고마운 마음만 전하고 만류를 한 덕에 조금 심심하게 결혼식이 끝나긴 하였지만, 발랄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찾아와 준 몇 명의 학생들에게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벌써 13년이나 흘렀지만 가끔은 전화나 문자로 또는 SNS를 통해 안부를 묻곤 한다. 몇 년에 한 번씩 경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들를 때마다 학생들과 소통을 아직도 하고 있다. 횟집을 운영하는 학생의 집에 가서 회를 사 먹기도 하고, 바닷가 민박집을 운영하는 학생의 집에서 방을 빌려서 민박도 하고,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님과 인사도 할 겸 학생의 집에 찾아가 담소도 나누며 가볍게 음료수를 건네고 오기도 하였다. 물론 학생들 몇몇과 만나서 어울리며 예전 추억도 소환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였다. 가끔 이러한 생활들이 나에게 이제는 낙이 된 것 같다. 그 학생들은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내가 첫 교직에 몸을 담그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보며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인별그램을 통해 가끔 그 학생들의 삶을 엿보곤 한다. 개중에는 결혼한 아이, 사랑하는 연인과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 아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면서 충실히 지내는 아이, 삶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즐기는 아이 등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교직 2년 차에 좋은 아이들과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첫 부임지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학생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짧은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조금은 학업에 집중이 될 수 있는 인문계고를 지원하여 구미로 떠났다...

문득 그때 어느 학생의 말이 내 귓속과 마음을 후벼 팠던 적이 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오시고 몇 년 안 계시다가 또 떠나시고 그러는데 쌤도 몇 년 안 있다가 떠나실 거죠?”

나는 이 말에 처음에는 무슨 뜻이지? 하고 이해를 못 하고서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너희들 만나서 즐겁고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너희들이 졸업하고 학교 찾아오는 것을 볼 만큼 충분히 여기서 근무하다가 시간이 흐르면 떠나야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쉽지 않았던 나의 첫 부임지에서의 교직 생활을 짧은 2년 만에 끝내면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만 늘 가득했다. 그래서인가? 첫 학교를 떠나고도 일부러 매년 그 작은 항구마을에 1시간 반이나 걸리는 이동시간을 감수하면서도 종종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첫정이 가장 무섭다고... 아마 내가 첫 학교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만 간직하는 것은 바로 그 첫정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의 기억은 힘든 기억은 잊고 그 기억을 미화시킨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좋은 기억만 남긴다고. 그게 사람이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려고 인간은 스스로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만들어 간다고.

아무튼 나의 첫 학교여 안녕~! 고마웠고, 즐거웠고, 나의 기틀을 마련하게 해 주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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