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수학 교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으며

< 구미 인문계 고등학교(1) >

by 육아하는 수학교사

본의 아니게 첫 부임지가 종합고등학교다 보니, 학년 수준에 맞는 수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직업적 갈망을 해소하지 못했다. 분명 첫 부임지에서도 아이들 나름의 수준에서 어렵지 않은 쉬운 내용으로 차근히 수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그 속에서 학생들의 깨달음을 관찰하며 거기에 걸맞은 교사로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교사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에 어떻게 보면 나의 지적 수준을 뽐내고 싶어 하는 욕심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그 탓인지 학년 수준에 맞는 수학적 지식을 학생과 함께 공유하지 못한 상황이 스스로에게 많이 답답했던 것 같다.

구미 인문계고등학교로의 부임은 나에게 나름 많은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사실 첫 학교를 떠나면서 아쉬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두 번째 학교인 인문계고등학교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더 설레게 하였다. 나의 두 번째 학교는 구미에서 학생들의 수준상 평균 정도로 평을 받는 학교였다. 학교 규모가 한 학년당 10 학급이다 보니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근 구미 공단에서 근무하시는 부모님 아래 성장한 학생들이 다수였다. 학업 역량은 천차만별이었고, 학생들의 개성과 가정형편도 다양하였다. 한 학년의 담임 선생님이 10명인 10 학급의 학교. 작은 학교에서 큰 학교로 옮겨온 나의 몸은 한동안 적응하느라 꽤 시간이 걸린 듯하다. 학교를 옮기고 처음 교직원 회의에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업무분장을 보게 되었다. 아직은 교직에서 고작 3년 차인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학년 학생 생활지도와 1-8반 담임. 이전 학교에서의 업무분장과는 다소 차이가 느껴졌다. 교사의 수가 적은 작은 학교와 이에 반해 교사의 수가 많은 큰 학교의 차이랄까? 그래서 그 무게감이 좀 더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주어진 업무분장표에서 느껴진 것은 한 학년 자체가 큰 부서로서 그 학년 전체를 자체적으로 운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기를 시작하면서 만난 10 학급의 담임 선생님들의 면면은 다양하였고, 쟁쟁한 분들도 꽤 있었다. 큰 학교는 학년 부장 선생님을 주축으로 운영된다. 보통은 학년 부장 선생님이 1반을 맡으시고, 학급 성격과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조금 조율하여 담임을 배치한다. 학년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에서 학년 부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학년 부장 선생님의 인품을 많이 느꼈다. 일반사회 선생님답게 상식적으로 알고 계시는 부분도 많으시고, 많은 아이들을 오랫동안 다루어 오신 연륜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바로 그 연륜은 온화함 속에서 학생들을 이해하고 전체를 관망하는 그 시야였다. 또한, 학년 내의 선생님들과의 의견 수합, 학년 간의 조율, 그리고 관리자와의 소통 능력 등이 주요하였는데, 이분은 그러한 능력을 인간적으로 잘 발휘하셨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학년 부장 선생님을 주축으로 다양한 각 반 선생님의 집합소가 바로 우리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의 교무실이었다. 학년 부장 선생님의 참모 역할을 하고 부장 선생님과 학년 전반을 운영하시는 기획 선생님, 교직에서 나름 많은 경험을 쌓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선생님, 자신의 업무에 칼 같으면서 학생들을 잘 휘어잡으시는 선생님, 기간제 교사지만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적절히 조율하며 생활지도를 잘 맡아주시는 남자 선생님, 교과 지도에 특히 진심인 선생님, 적정한 교직 활동을 통해 교직 전반의 흐름을 파악하고 온정을 기반으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단히 노력하시는 선생님, 아이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시는 선생님, 마음이 따뜻하여 가끔 학생들에게 상처를 쉽게 입으시는 선생님 등등이 우리 학년 선생님들의 면면이었다. 아마 이 시기를 보내면서 늘 주변의 다양한 선생님들을 관찰하고 선생님들의 성향과 생각들에 대해 눈여겨보아 왔던 것 같다.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쓴 아주 소소한 시 한 편을 소개하고 넘어가겠다.




교사의 색깔


아이들을 휘어잡으려는 교사

아이들을 달래려는 교사


아이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는 교사

아이들과 거리를 두는 교사


아이들에게 원칙을 강요하는 교사

아이들의 색깔에 모두 맞추려는 교사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교사

아이들보다 업무에만 집중하는 교사

아이들보다 자신의 건강에만 신경 쓰는 교사


다양한 색깔의 교사들.


나는 어떤 색깔인지

어느 색깔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자문해 본다.


그저 오늘도 아이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겨 본다.





우리 학년의 구성 형태는 학년 부장 선생님과 기간제 선생님, 그리고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자 선생님인터라 여초현상이 좀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떠한 문제 상황이나 협의 상황에서는 여자 선생님들의 의견 피력이 조금 더 강하였단 느낌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색깔이 뚜렷한 다양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이제 고작 두 번째 발을 내딛으려고 노력하는 초짜 중의 초짜였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학년 선생님들의 자유분방하고 민주적인 학년 분위기 속에서의 의사 표현 방식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각자 선생님들의 생각들을 이해하고 곱씹어 보면서 차츰 나의 교직관을 성립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성향상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주도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숙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더욱 관찰과 생각의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그렇게 이동한 학교에서의 첫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맡은 업무가 바로 생활지도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아이들. 수백 명에 달하는 아이들. 그 모두를 살피고 일관성 있는 지도를 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적응해 나가도록 하기에는 내가 가진 역량은 너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등교 시간 생활지도 및 큰일이 생길 때 학생부장님과 학년 부장님을 대동하여 그들의 일 처리 방식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인 것이 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부족한 나의 능력을 그래도 지켜봐 주시고 이해해 주신 학년 부장님께 매우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도 가득하다. 사실 그 시절 나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참 부끄럽기도 했다. 물론 성장의 과정이지만 그렇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기에는 스스로에게도 실망감이 가득했다. 늘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은 많았지만 그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수학 교사라서 그럴까? 꼭 그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갈망은 컸지만 구해지지 않는 그 답 속에서 난 매우 허덕거린 듯하다. 언젠가 학생부장님께 진지하게 여쭈어보았다.

“부장님 제가 아직 경험도 적고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해서 그런데, 생활지도란 것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 답을 좀 알고 싶네요...”

이때 학생부장 선생님의 답변은 이후에도 나에게 귀감을 준 한 마디였다.

“김 선생님 생활지도에 답이 어디 있겠어요? 늘 저도 그 답을 알고 싶네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노력하고 열심히 해봐요. 그러다 보면 답이 나오겠죠.”

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평생을 사신 그 유명한 학자들과 소위 말하는 성인들도 본인의 삶에 있어서 답을 쉽게 찾지 못하시는데, 수없이 많은 저 자신의 삶을 살아갈 학생들의 삶에 관여하여 나만의 답으로 잣대를 들이댄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답이 꼭 옳다고만은 보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꾸준히 그 순간순간 고민을 많이 하고 아이들을 위해 진실된 마음 하나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혹은 명확해야 할 땐 확고하게 나아가는 그런 방향을 잡아야 된다는 것을. 그것을 그제야 교직 3년 차에 조금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1년간 이런저런 노력을 하였으나 아이들과의 많은 마찰은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 당시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행해 온 생활지도 방법이었지만, 후회되고 아쉽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행동들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조금 커가고 있었나 보다.

학기 초 학생들 개인 자기소개 파일을 통해 학생들 파악하기, 야자 시간 학생 상담, 수업 준비, 야자 감독, 아침저녁 생활지도, 행정업무 등등 큰 학교에서 교사에게 주어지는 일은 다양하고 많았다. 물론 첫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였지만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때는 학생들의 눈치가 보여서 어떻게든 수학 수업을 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학생들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주 좌절하기도 하였다. 나의 교육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닌지 늘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그 정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양한 선생님들의 지도 방법들을 보고 습득하고, 따라도 하고 변화도 주어봤지만 쉽지 않았다. 훗날 알았지만 결국 본인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은 필수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과 나의 교직에서의 가치관이 보태어져 학생들에게 지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구미에서의 첫해는 말 그대로 정신없음과 서툼 그리고 부족함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표현해 주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고, 학생 생활지도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한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교직 3년 차의 시간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저물어 갔다. 한 해를 살면서 마음고생이 많았으나 그만큼 성장하는 진통을 겪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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