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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Oct 25. 202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전 재건과 종교개혁 1

본문|에스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7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9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10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 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11 금, 은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에스라서 개관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즉위 원년에 내린 칙령(고레스 칙령)으로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와 같은 포로 귀환은 총 세 차례 이루어지는데, 1차는 기원전 537년 ‘스룹바벨’의 인솔 아래 약 5만 명(종들까지 포함)이 돌아와서 온갖 방해를 극복하고 마침내 기원전 515년 2차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완성합니다. 2차 성전 건축은 기원전 586년 남 유다가 멸망한 후 만 70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한 이후 80년이 지난 기원전 458년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에스라’가 1,754명을 인솔하여 돌아옵니다. 그리고 3차 포로 귀환은 기원전 444년 선지자 ‘느헤미야’의 인솔 아래 이루어집니다.     


  에스라서는 1차, 2차 포로 귀환 때 있었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에스라서는, 1-6장에 1차 포로 귀환 과정과 성전 재건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고, 7-10장에서는 2차로 귀환한 에스라가 주도한 종교개혁과 대부흥 운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다음 표 참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은 고레스 왕이 내린 조서, 즉 ‘고레스 칙령’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1절). 바사의 고레스 왕이 원년에 온 나라에 칙령을 내린 배경 속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하나님이 지혜와 사랑으로 온 우주에서 발생하는 일을 돌보고 이끄시는 통치를 말합니다. 즉,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린 것은 그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내린 것으로, 여기에는 특히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이런 약속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하나님은 이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또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고레스 왕으로 하여금 칙령을 내려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3절).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남 유다가, 더구나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사건은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주권을 빼앗긴 후 해방이 되기까지, 또 수많은 강제 노동자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기까지 3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그런 일도 36년이나 걸렸는데,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고 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건은 그것의 두 배나 되는 시간대입니다. 이 사건은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것들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거짓말이나 후회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신 약속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반드시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유프라테스 강가의 술사인 ‘발람’도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하고, 그 약속에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아멘’ 하고 반응할 때,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처럼, 우리의 삶에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생생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에서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이렇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라면,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고레스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명’입니다.     


  2-3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고레스 왕에게 명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놀고먹지 말고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전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던 삶에서 돌이켜, 이제부터 하나님을 그들 삶의 한가운데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과 함께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도 크나큰 축복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자신들을 위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하여 성전 재건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사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시대에도 변하지 않고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유다가 멸망한 이후까지 수없이 메시아(그리스도)를 약속해 주셨고, 그 약속대로 메시아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그분을 다시 살리셨습니다(고전 15:3-4).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롬 14:9). 이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우리에게도 유다의 남은 자들처럼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은  바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즉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본문 속에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몇 사람만 올라가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의 백성 된 자는 모두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3절). 만약 성전 건축을 위해 몇 사람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면, 성전은 결코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세워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몇몇 사람만 참여하여 세울 수 있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나 혼자 빠져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회는 병들고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좌우되므로, 우리는 이것도 놓쳐서는 결코 안 됩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남은 자들에게 성전 건축의 사명을 주셨을 때,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재건은 이렇게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입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합심하여 교회를 세워나갈 때, 교회는 그때야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띨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도 받지 않고 억지로 교회 세우는 일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허물고 병들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모든 사람이 일어나야 하고, 또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우리 안에 충족될 때, 교회는 비로소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자원까지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고 소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본문이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세 번째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이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게 하실 때,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성전 건축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그들의 손에 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게 될 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되 이웃의 물품을 강탈해서 취하게 하지 않고, 그 이웃들이 자발적으로 기쁘게 돕고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7-11절에 보면,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성전 그릇을 고레스 왕이 창고지기인 미드르닷을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내주었는데, 그 수효가 5,400개라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소명만 달랑 넘겨주면서 그 뒷일을 책임지지 않는 분이 아니라, 소명을 주실 때 그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그 수효까지 세어 가면서 구체적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하시는 분일까요? 그분은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오히려 소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그때보다 더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실 때,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명을 받은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그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자원까지 통째로 받은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소명을 주실 때,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 즉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도 함께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 6:3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뿐 아니라, 약속을 지키실 때 소명과 함께 그 소명을 이룰 수 있는 모든 자원까지 구체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손수 우리에게 주신 자원인 예수님, 즉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굳게 붙잡고, 또 우리의 소명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모두 자원하여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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