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팅은 옷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반복하게 되는 디자이너의 기본 업무다. 피팅은 디자인 과정에서 형태를 보정하고 라인을 잡는 일이기도 하고, 최종 제품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체형에 가장 잘 맞을 수 있도록 품과 길이를 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맞춤복의 피팅은 한사람의 체형에 맞춰 크기를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대중을 위한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착용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른 체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S M L XL의 사이즈 구분만으로 완벽한 착용감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맞는 적당한 사이즈를 고려해서 피팅을 한다. 대중 디자인의 제작과정에서 피팅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
학생들의 작품 피팅은 스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지 체크하는 것 부터 시작한다. 그림으로 그린 디자인을 머슬린(Muslin: 광목)으로 만들어서 가봉용 마네킹(이하: 바디)에 실제로 입혀보면 그림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이너의 스케치는 몸을 너무 날씬하게 그리는 경향도 있고 상대적으로 다리를 너무 길게 표현하기도 한다. 때문에 머슬린으로 만들어진 첫 가봉은 대부분 스케치와 다른 느낌이다. 첫 피팅은 제작에 실제로 사용하는 소재를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제작할 원단은 머슬린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머슬린 가봉을 먼저 한다. 머슬린도 종류가 다양하여 실제 사용할 원단과 가장 유사한 고시감(コシ感: 뻣뻣한 정도)의 머슬린을 선택한다.
머슬린 가봉은 피팅을 완벽하게 하기에는 부족하다. 정밀한 피팅 보다는 전체적인 부피감과 라인을 조정하는 것이 머슬린 가봉의 목적이다. 스케치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첫 가봉은 피팅을 하면서 스케치와 비슷하게 형태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패턴은 많은 수정이 필요하거나 새로 떠야 할 정도의 수준이다. 그렇지만 여러번 가봉을 하면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도식화를 수정하고 패턴을 수정하면서 원래 디자인과 조금은 다르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형태가 잡혀간다.
원래 피팅은 몇분에 몇 인치를 잡는 디테일한 작업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작품 피팅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보다는 생각하는 형태를 실제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도 머슬린 피팅으로 실제형태를 만들다 보면 훨씬 정확하게 디자인의 완성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러번의 머슬린 작업으로 패턴을 완성하더라고 실제 사용할 원단으로 가봉을 보면 머슬린으로 가봉할 때 보다 작품이 더 안좋게 보이기도 한다. 원단 봉제가 머슬린보다 어렵고 형태감도 잘 살지 않기 때문이다. 제원단 가봉은 여러가지 보정 장치를 사용하여 최종 완성의 형태를 만든다. 볼륨감을 만들기 위해 심지를 사용하거나 패드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도 있지만 와이어를 사용하거나 원단을 본딩하기도 한다. 이제 진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원단과 부자재와 씨름을 시작한다.
제원단 가봉
머슬린 가봉으로 어느 정도 패턴이 완성되면 제원단으로 피팅을 하면서 형태를 완성해 나간다. 학생들의 질문이 가장 많을 때가 이때다. 디자인을 실제 형태로 만들면서 많은 의문도 생긴다. 소재를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면서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 어떤 소재를 선택해야 하고, 선택한 소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각 팀의 콘셉트에 따라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방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팀마다 진도가 달라지는 때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팀의 작품이 좋아 보여 비슷한 테크닉이나 소재를 사용해서 만들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각자가 지금까지 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원단을 다루고 디테일을 만든다. 경험이 적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원단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원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동대문 사장에서 구입하는 방법뿐이다.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원단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평범한 원단이다. 더군다나 학생들이 값비싼 원단을 구매할 수는 없다. 이런 평범한 원단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물론 아방가르드한 방식으로 디자인한 작품은 원단보다는 드레이핑으로 만들어진 형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원단의 구애는 좀 덜 한 편이다. 하지만 원하는 쉐입(shape)에 적당하고 디자인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원단을 사용할 수 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원단을 가공하는 방법도 가르친다. 새로운 원단을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은 직조(織造)를 하거나 니트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학생 수준에서 멋진 작품이 나오기는 어렵다. 원단을 직접 짜지 않고 원하는 소재를 만드는 방법은 기존의 원단에 추가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염색이다. 염색은 다양한 기법이 있고, DTP(Digital textile Printing)를 이용하면 화려하고 세밀한 표현도 가능해진다. 염색을 하거나, 날염을 하거나, 기존 원단에 추가로 패치웍(patchwork)을 하거나, 본딩(Bonding)을 하거나, 핫픽스(hotfix) 작업을 하는 등등 다른 재료를 더하거나, 찢거나 지그재그 봉제를 하거나, 다양한 대미지(damage)를 주는 등 주변에 도구를 이용해서 추가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원단에 후가공(後加工)을 해서 자기만에 특별한 원단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은 하지 말라고 한다. 심한 경우는 몇 주 동안 앞판 한 장을 만들고 있는 학생도 있다. 나는 한 시간 안에 얼마나 할 수 있는 작업인지 확인하고 10시간 안에 끝낼 수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원단 가공 방법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패턴에 따라 재단과 봉제를 하고, 만들어진 작품에 추가 작업을 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하는 제원단 가봉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망한다.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여 원단을 가공하고 재봉을 하고 수정도 여러 번 했지만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 대로 작품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노력했으나 실망한 학생들을 칭찬한다. '넌 분명히 늘었어!' 중간에 포기하고 엉망인 가봉을 가져온 학생에게는 약간의 협박도 한다. '널 과소평가하지 마라!'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 어설픈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학생들의 디자인이 완성될 수 있도록 크리틱을 하다 보면 내 머리도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디자인 회의는 늘 두통을 동반한 쾌감이다.
작품을 실제로 만들기 시작한 지 3주 차에 들어가면 작품을 어떻게 마케팅을 할지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제를 내준다. 최종적으로 어떻게 전시하고, 촬영하고, 어떤 마케팅을 할 것인지 결정하면 작품의 마지막 형태는 어떻게 되어야 할지 좀 더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