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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만약 내가 벌레로 변한다면?

카프카의 <변신>이 던진 질문, 가족이 지닌 힘

by 은하수반짝
Quadrio 쇼핑센터 앞의 프란츠 카프카 조각상

프라하 곳곳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그가 청소년 시절 다녔던 학교가 남아 있었고, 프라하성의 황금소로에는 그가 <시골의사>를 집필하던 작은 집이 자리해 있었다. 하벨시장 부근의 쇼핑센터 앞에는 거대한 카프카의 머리 조각상이 있었는데, 42장의 금속 판이 바람과 빛을 따라 끊임없이 회전하며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이처럼 카프카의 내면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 박물관 앞의 동상

생전의 카프카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코 사회에서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부조리한 권력과 제도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공포와 소외를 선명하게 그려냈다. 때문에 현재 그는 체코의 불합리한 역사와 인간 실존을 정직하게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카프카 박물관 앞마당에는 기묘한 조각이 있다. 두 남성이 마주 서서 오줌을 누어 체코 지도 모양의 수조 위에 글자를 그려낸다. 이 장면은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간 존재를 풍자한다.


지금도 인간은 역사라는 거침없는 파도에 계속 흔들리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쓰며 산다. 하지만, 생존과 현실의 벽에 번번이 좌초하고 만다. 카프카는 묻는다. 불안하고 고독한 존재로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권위와 억압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하고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인가?


카프카의 약혼사진(1917년)

카프카의 고통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기인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상인으로서 강인함과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내성적이고 섬세한 아들을 나약하고 쓸모없게 여기며 그를 늘 깎아내렸다. 카프카는 일평생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렸고, 자신을 부정하며 결혼까지 포기했다. 아버지에서 기인한 무력감은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아버지가 사과를 던지는 장면과 겹쳐진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더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카프카가 실제로 경험했던 가정의 냉혹한 공기였다.


카프카는 1924년, 폐결핵에 걸려 40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기 전,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했지만, 친구 막스가 이를 거부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읽혔고, 그는 20세기 실존의 아이콘이 되었다. 카프카가 아버지 복은 없었어도 친구 복은 확실히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과 <변신>을 읽었다. 소설은 청년 그레고르가 거대한 해충으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침대 위에서 등을 대고 누워 있던 그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마치 갑옷처럼 단단한 등에 눌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머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고통스럽게 뒤로 젖혀졌고, 몸에서는 맑은 진액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프란프 카프카의 <변신> 중에서-

원작에서는 단순한 '벌레'가 아닌 '해충'이라고 말한다.

온유가 이 기괴한 설정에 놀라 물었다.
“근데 정말 충격이다. 사람을 왜 하필 커다란 벌레로 변하게 했을까?” 이어서 다솔이 대답했다.
“그니까 일을 못하면, 돈만 축내는 벌레같은 존재라는 뜻인가? 으~ 징그러워.”


작품에서 그레고르는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공장 기계처럼 살았다. 가족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자 충격에 빠진 부모는 그를 방에 가뒀다. 믿었던 여동생도 처음엔 음식을 챙겨 줬지만 점차 그를 ‘저것’, ‘괴물’로 부르며 혐오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아파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가족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오는 그레고르가 아닌 그냥 벌레가 죽은 것뿐이라며 산책을 간다. 이렇게 <변신>은 가족 안에서조차 인간이 얼마나 쉽게 소외당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며,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자본주의 냉정함을 그려냈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얘들아, 그레고르는 왜 벌레로 변했을까?”

“바쁘게 살아서? 일하기 싫어서 그랬나? 책에도 벌레 그레고르가 천장에 매달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어.”

“오, 다솔, 예리한데? 그렇다면 벌레로 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질문에 온유가 말했다.

“그니까 잘 놀아야겠네. 아 나도 천장에 매달려보고 싶다. 재미있을 텐데...”

이어서 온유는 <변신>을 읽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다던 바로 그 질문을 했다.

“근데 엄마, 내가 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 질문에 나는 일부러 생각하는 척 뜸을 들였다.

1916년에 발표된 <변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사랑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등등. 만약 그레고르의 경제적 짐을 가족들이 나눠 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도 한숨 돌리면서 좋아하는 취미를 찾고, 조금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보며 장난스럽지만 진심을 눌러 담아 말했다.
“혹시 너희가 벌레로 변하더라도 걱정 마. 엄마, 아빠는 끝까지 너희를 돌봐줄 거야. 다만 천장에 매달릴 시간 많으니까 그건 열심히 연습해서 너희만의 특기로 삼아야지. 그리고 방 청소도 각자 알아서 하고, 다리가 여섯 개니까 설거지는 더 빨리 끝낼 수 있겠네.”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었고, 카프카의 무거운 질문이 잠시 가벼워졌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작은 짐이라도 나누려는 가족 간의 배려가 아닐까? 그것이 경쟁과 성과로 짓눌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잠시 숨 쉴 수 있는 여유이자, 가족이 지닌 힘일 것이다.

여행 전후 아이들과 채운 <변신> 독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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