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투스 대성당에서 만난 체코인의 정신
프라하성의 하이라이트는 성비투스 대성당이었다. 하늘로 치솟은 고딕 기둥과 거대한 장미창,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압도적이었다. 산화된 사암 벽의 거뭇한 흔적은 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처마 끝 괴기스러운 가고일은 빗물을 뿜으며 악령을 쫓는 수호자처럼 서 있었다. 옆모습은 더 웅장했다. 수많은 첨탑과 섬세한 갈빗대 문양이 거대한 선박처럼 성당을 떠받치고 있었다.
“와, 지금까지 본 성당 중 최고야.”
“어떻게 이런 성당이 지구에 있지?”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감정을 사진으로 담느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렀다.
성당 안에는 600년의 세월이 응축돼 있었다. 높고 장엄한 첨두아치와 늑재 궁륭, 금빛이 바랜 조각과 장식물마다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당 내부를 거대한 그림 성경책으로 바꾸어 놓았다. 온유는 작은 방마다 가득한 화려한 장식에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정면의 장미창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담았고, 제단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성비투스의 관이 놓여 있었다. 성 비투스는 3세기 말에 순교한 이탈리아 성직자인데, 여러 나라에 나뉘어 전해진 그의 유해를 모신 작은 성당이 점차 확장되어 지금의 대성당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성당의 진짜 주인공은 프라하의 수호 성인인 성 요한 네포무크 신부였다. 성당 벽면의 프레스코화와 2.3톤의 순은으로 만든 그의 관과 조각상, 그리고 잘린 혀 모형을 든 천사상은 그를 향한 체코인의 깊은 존경심을 보여주었다.
전설에 따르면 14세기 말, 보헤미아의 왕 바츨라프 4세는 왕비 소피아의 고해성사를 의심했다. 혹여 불륜이 담겨 있을 것이라 짐작한 왕은, 그녀의 고해를 들은 네포무크 신부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신부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신념 앞에서 단호했다. 왕은 고문하며 강요했지만, 신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왕이 자신이 아닌 단 한 명에게만이라도 말하라고 하자 신부가 강아지에게만 살짝 말했다. 분노한 왕은 신부의 혀를 뽑고 시신을 블타바강에 던지라고 명했다. 그러나 며칠 후, 그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은 채 물 위에 떠올랐고, 머리 위에는 다섯 개의 별이 반짝였다고 한다.
“진짜로 별 다섯 개가 떴을까?” 온유의 진지하게 물었고 다솔이는 면박을 줬다.
“야, 그 말을 믿냐? 전설이잖아. 이그.” 남편이 웃으며 이어 말했다.
“별 다섯 개면… 오성급 호텔인데? 신부님이 엄청 고급스러운 곳으로 가셨나 보네.”
딸이 아빠를 향해 웃으며 “역시 아빠는 T야”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람들이 본 건 별빛이라기보다, 끝까지 신념을 지킨 한 사람의 ‘순결한 빛’이었을 거야.”
“역시, 엄마답다. 누가봐도 INFJ네!”
대성당 안쪽에는 체코의 수호 성인인 바츨라프의 예배당이 있었다. 황금빛 벽과 1,300개가 넘는 보석으로 장식된 무덤은 눈부셨다. 벽화에는 그의 삶과 순교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바츨라프가 동생 볼레슬라프의 칼에 쓰러진 비극적인 순간조차 신앙의 빛으로 기억되었다.
바츨라프 이야기는 성 비투스 성당 옆에 있는 이르지 성당에 각인돼 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르지 성당은 바츨라프와 그의 할머니인 루드밀라 성인을 추모하는 곳이다. 이들은 10세기 체코에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인물이다. 루드밀라는 어린 손자를 대신해 섭정을 맡아 기독교 신앙으로 그를 양육했다. 그러나 권력 다툼 속에서 며느리 드라호미라의 음모로 그녀는 목 졸려 죽임을 당했다.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솔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할머니가 손자를 신앙으로 키워줬는데, 며느리가 오히려 죽였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며느리는 슬라브족의 전통교를 믿었거든. 하지만 루드밀라의 신앙은 바츨라프에게 이어졌대. 그녀의 희생이 체코의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된 거야.”
“그런데 왜 체코인들은 드라호미라가 아니라 루드밀라와 바츨라프를 성인으로 생각해? 기독교를 좋아하나?”
남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시에는 기독교가 야만에서 벗어나 유럽의 문명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했겠지.”
루드밀라와 바츨라프는 권력보다 믿음을, 야망보다 사랑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바츨라프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공정하게 나라를 다스리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기에, 그들은 지금도 체코인들에게 신앙과 정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네포무크 신부와 바츨라프, 루드밀라는 단지 종교적 인물이 아니었다. 외세의 지배와 전쟁 속에서도 체코인들의 마음을 붙들어 준 ‘정신의 기둥’이었다. 고난 속에서도 진리와 양심을 지킨 흔적이었다. 프라하는 야경만 예쁜 곳이 아니었다. 곧은 신념과 정의가 살아있는 도시였다. 성비투스 대성당은 그 증거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 아래에는 천 년 동안 켜켜이 쌓인 믿음과 희생이 잠들어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남긴 가장 장엄한 고백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네포무크 성인 옆에 빛났던 별 다섯 개는, 정의를 사랑하는 체코인들의 마음속에 반짝이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