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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성, 천 년의 빛과 어둠을 품은 요새

왕의 위엄과 민중의 희생이 공존하는 삶의 무대

by 은하수반짝
프라하성 정문에서 내려다 보는 프라하 전경

프라하성을 가기 위해 카를교를 건넜다. 구시가지에 있던 성 니콜라스 교회와 꼭 닮은 쌍둥이 교회가 나타났다. 화려한 교회 내부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했다는 4,000개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오르간이 있었다. 이어 프라하성을 오갈 때 왕이 다녔다는 네루도바 거리로 향했다. 건물 위쪽에는 사자, 태양, 포도송이, 게 등으로 다양한 부조가 새겨져 있었다.

“엄마, 왜 건물마다 그림이 있어?” 온유가 물었다.
“옛날엔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림으로 집 주소를 대신했대.”


이 부조는 집 주인의 특징이나 직업을 보여주었다. 대장장이가 살던 집에는 두 개의 쇠망치가, 포도주 상인의 집에는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학자의 집에는 별과 태양이 새겨져 있었다. 또 어떤 집에는 게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는데, 주인이 성격이 괴팍했다고 해서 ‘뒷걸음치는 게’ 모양이 붙여졌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네루도바 거리의 그림 부조


가파른 오르막길을 지나 성 정문에 이르자 세계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스타벅스가 우릴 반겼다. 탁 트인 프라하의 풍경은 황홀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지붕들은 삼각형과 사각형이 겹겹이 어우러져 하나의 물결을 이루었고, 그 사이로 블타바강이 은빛으로 흘렀다. 강가를 따라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과 다리 풍경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낭만적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다. 축구장 열 개 크기의 성안에는 왕궁과 성당, 그리고 정원과 수도원까지, 체코 천 년의 권력과 신앙이 켜켜이 담겨 있다. 지금도 이곳은 체코 공화국의 관저로 쓰이는 만큼, 근위병들이 위엄 있게 지키고 있었다.


이 프라하성과 카를교는 14세기, 카를 4세가 건축했다. 그는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삼았는데, 그 제국은 오늘날의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는 물론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동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였다. 그 광대한 제국의 심장을 프라하로 정했다는 건, 당시로서도 대담하고 놀라운 선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카를 4세는 ‘체코인의 아버지’라 불리며 100코루나 체코 지폐 뒷면을 장식하고 있다.

프라하 로열가든과 벨베데레


프라하성에는 총 다섯 개의 정원이 있는데 그 중 로열 가든은 튤립과 장미, 아담한 분수 그리고 신전을 연상시키는 하얀 여름 궁전(벨베데레)이 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보자마자 설렜다. 카를 4세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1세가 아내인 안나 여왕을 위해 지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한 채 그녀가 세상을 떠나버려 궁전은 애틋한 사랑의 기념비가 되었다고 한다.


성에는 두 곳의 왕궁이 있다. 현재 대통령 관저로 쓰이는 곳이 신왕궁이고, 개방된 곳이 구왕궁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진 이곳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단단히 다져졌고, 14세기에는 카를 4세가 대대적으로 증축을 시작해서 17세기까지 보헤미아 왕이 거처한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왕의 대관식과 성대한 연회가 열리던 중심 공간이 블라디슬라프 홀이다. 하늘로 치솟은 듯한 높은 천장이 권력과 영광의 무게를 드러냈다. 또 구왕궁에는 보석 십자가와 공 모양의 보주가 있었다. 보주는 왕이 신에게서 권력을 받았음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보석이 무척 화려해서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다.

구왕궁의 보석 십자가와 보주와 구왕궁의 블라디슬라프 홀


하지만 바로 구왕궁에서 체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1618년 신교 귀족들이 황제의 대리인을 창밖으로 던진 ‘프라하 창밖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황제의 정책에 분노한 귀족들은 단숨에 행동으로 맞섰고, 대리인들은 높은 창에서 추락했으나 거름더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곧 유럽 전역을 휘감은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구교와 신교의 종교 갈등과 권력 다툼이 얽히며 전 유럽을 황폐화시킨 전쟁,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비극이 되었다. 15미터 높이의 창문 밖을 보며 아이들은 눈을 크게 떴다.


“엄마, 창밖으로 사람을 던졌다니, 진짜 잔인하다.”

“그러게 말이야.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렇게 목숨을 걸었을까?”

황금 소로의 집 내부와 황금 소로 골목

골목을 따라갔더니 장난감 집인 양, 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원래는 시종과 보초병들이 살던 집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금세공인과 연금술사, 예술인들이 모여 들었고, 그래서 이곳은 ‘황금 소로’라 불리게 되었다. 프란츠 카프카가 잠시 머물며 글을 쓴 곳은 카프카의 문학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현재는 주로 기념품 가게가 많았지만 온유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곳이 있었다. 방들이 복도로 연결되며 무수한 칼과 총, 방패들이 진열돼 있었다. 실제 갑옷을 보며 온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전사들이 살았던 중세로 거슬러 간 듯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골목 끝 달리보르카 탑 안에서 우린 깜짝 놀랐다. 해골과 뼈들이 사람의 형체를 이루며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딱 봐도 고문과 처형이 이뤄지던 감옥임을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고문 도구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지하 깊숙이 독방이 있는데, 죄수들은 그곳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채 굶었다고 한다.


“이곳에 프라하의 영광과 왕의 권위 그리고 민중의 고통이 한 자리에 있네.”

프라하성에는 다른 유럽 성들이 품어내는 화려함 대신 고난과 아픔을 품은 비장한 아름다움이 흘렀다. 천 년의 시간 속에서 체코인들의 고통과 희망, 예술과 신앙이 층층이 쌓여 있는 요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무거운 역사를 안고 있는 성 곳곳에서 우리 가족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결국 인생이란, 예나 지금이나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무대가 맞구나.



*브런치 발행 요일을 변경하였습니다. 기존 월요일, 금요일에서 월요일, 목요일, 일요일로요. 주 3회로 글을 발행해서 좀더 신나게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구독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황금 소로에 있는 중세 기사의 갑옷, 달리보르카(갑옷) 입구에 걸린 해골과 잔인한 기구가 비치된 고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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