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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유럽의 낭만에 열광하는가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찾은 삶의 균형

by 은하수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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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의 밤풍경과 틴 성모 마리아 교회

늦은 밤, 처음 마주한 구시가지 광장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노란 조명에 물든 첨탑과 성당 앞은 낭만적인 무도회장 같았다. 레스토랑 대형 테라스에서는 부딪히는 맥주잔이 흥취를 한까ᅠ갓 끌어 올렸다. 이곳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웅장함과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 만난 프라하는 낯설었지만, 오래된 친구처럼 다정했고, 무척 정겨웠다.


아침 일찍, 구시청사 앞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카페라떼를 입안에서 굴렸다. 햇살을 받은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14세기 고딕 양식의 틴 마리아 성당, 로코코의 우아함이 담긴 골츠킨스키 궁전, 민트빛 양파 모양 돔이 사랑스러운 성 니콜라스 교회까지 천 년의 시간은 다양한 건축 양식들을 뒤섞어 놓았고, 유럽의 역사를 한눈에 재현해 냈다.


프라하는 이 자유로운 온기 덕분에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히틀러마저 이곳을 “제국의 보석”이라 부르며 파괴를 주저했다고 한다. 전쟁 후, 산업화에서는 뒤쳐졌어만 붉은 지붕과 첨탑은 고스란히 남아 고즈넉한 중세의 낭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함께 틴 마리아 성당 앞으로 갔다. 성당 아래쪽이 레스토랑 건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이 성당은 누구도 전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내부를 보기 위해 레스토랑 골목으로 갔지만 예배 중이었다. 온유는 아쉬움을 달래며 “여긴 검은 마녀가 고양이랑 살고 있을 것 같아”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구시청사의 천문 시계


정각이 가까워지자 우린 구시청사 시계탑 앞으로 잰걸음으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위해 모여 있었다. 곧 해골 인형이 줄을 당기며 죽음을 알렸고, 시계 위쪽 창문이 열렸다. 동시에 허영과 탐욕, 정욕을 상징하는 인간 조각상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죽음 앞에서 허둥거렸다. 창문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가 차례로 등장했고, 마지막에는 수탉이 힘차게 울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아이들은 공연이 짧다며 아쉬워했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랬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탐욕은 덧없다. 그럼에도 삶은 이렇게 계속된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은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이 진실을 360도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었다. 공연에 환호했던 관광객들의 발 아래에는 스물일곱 개의 하얀 십자가가 있다. 1621년, 구교와 신교의 갈등 속에서 스물 일곱 명의 개신교 귀족이 처형당했던 흔적이었다.


600년 동안 광장을 지켜온 천문 시계에도 아이러니한 전설이 얽혀 있다. 시계를 만든 장인 하누슈가 혹여 다른 도시에서도 같은 시계를 만들까 두려워한 권력자들은 그의 두 눈을 불태웠다. 분노한 하누슈는 기계장치를 망가뜨려 시계를 멈춰버렸다. 그 뒤로 시계는 80년 동안 멈췄다고 한다. 전설이기에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환희와 고통의 순간은 동시에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아이러니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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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전통 음식인 뜨레들로와 굴라쉬

인생은 복잡해도 뱃속의 허기는 강렬하게 울려댔다. 따끈한 굴라쉬가 식탁에 올랐다. 헝가리 목동들이 가마솥에 고기와 채소를 넣어 끓이던 소박한 스튜. 국물은 한국의 찌개처럼 따끈하고, 빵과 함께 먹으니 밥을 찌개 국물에 적신 듯 정겨웠다.
“이거 먹으니까 힘이 나네. 역시 한국인에게는 국물이 최고다!”

남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중세 농부들도 이렇게 하루의 고단함을 달랬을 것이다.


디저트로 ‘굴뚝빵’이라 불리는 ‘뜨레들로’를 샀다. 이는 체코의 축제 음식인데, 기다란 쇠막대기에 감아 구워낸 모양이 독특했다. 막 구워낸 따끈한 빵에 아이스크림을 얹으 먹으니, 고소함과 달콤함이 함께 입안에서 터졌다.


하지만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었다. 이렇게 현대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먹거리가 넘쳐난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랜선 여행도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갈수록 속도와 경쟁에 쫓기고, 끊임없는 비교와 불안 속에서 마음이 자주 흔들린다. 편리함은 늘어났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가는 아이러니라니.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유럽의 느린 시간에 매료된다. 천 년의 첨탑, 스테인드글라스에 스민 빛은 마치 시간의 체에 걸러져 남은 빛나는 알갱이 같다. 그러나 내가 유럽에 열광하는 까닭은 단지 그 화려함 때문만은 아니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음악을 속에서, 고단했던 인간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색의 여유가 더 큰 몫을 차지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그 멈춤의 시간이 우리를 붙든다.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달리듯 살아왔다. 수학 문제집을 붙들고, 영어와 과학 실험, 독서와 컴퓨터 능력, 운동까지, 하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보고 걷고 들어면서 역사와 문학, 철학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인문학은 당장 성적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삶의 지혜와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더 본질적인 배움이었다. 아이들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달리기만 했는데, 여기 오니까 숨 좀 돌릴 수 있어서 좋아.”

“그니까 엄마, 활동지 오늘은 건너뛰면 안 돼?”

“그래, 오늘은 건너뛰자. 대신 밀린 일기를 마저 쓰자.”

아이들의 표정이 순간 굳더니 동시에 외쳤다.

“헉, 그게 더 힘든데, 진짜 다 써야 해?”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다. 여행 와서 활동지는 쿨하게 패스하면서도, 일기는 꼭 써야 하는 집. 놀 땐 마음껏 놀되, 중요한 기록은 반드시 남기는 집. 쉬는 듯 안 쉬는 듯, 공부는 안 하지만 또 뭔가 배우게 되는 헷갈리는 이 규칙, 참으로 ‘우리집 표 아이러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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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굴뚝 대신 남은 붉은 지붕, 유럽식 건물 앞의 슈퍼카, 스타벅스 차창밖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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