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의 옥에 티, 전선 꾸러미
집안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가장 보기 싫은 것 중 하나는 방구석에 뭉쳐져 있는 전선 꾸러미, 전자 제품을 연결하는 각종 케이블들이다. 철이나 플라스틱 덩어리로 만들어진 전자 제품 들은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전기를 연결하기 위해 노출된 줄 때문에 감성적인 공간을 만드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요즘은 그래도 무선으로 쓸 수 있는 전자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고 인테리어 공사할 때 크고 중요한 전자 제품들은 매립이나 빌트인으로 미리 세팅되기 때문에 전기 선들이 실타래처럼 엉켜져서 만들어지는 흉물스러운 ‘전선 꾸러미’ 들이 방구석 여기저기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콘센트에 꽂아서 사용하거나 매일 충전해 써야 하는 전자 제품들은 매일같이 신상품으로 세상에 넘쳐 나오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멀티탭과 전기 줄들은 잘 정리된 공간 안에 옥에 티가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이동 가능한 전자 제품류는 웬만하면 블랙이나 실버, 진한 그레이 컬러를 기본으로 쓰기 때문에 공간 내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전선줄과 멀티탭들도 모두 블랙으로 맞춰 주고 있다. 계절마다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해야 하거나 이동하며 사용해야 하는 가전들이나 유선으로 사용 시 반드시 전깃줄을 연결해야 하는 제품류들, 선풍기, 전기난로, 컴퓨터, 노트북, 프린터, 핸드폰, 전기 청소기, 가습기, 테이블 램프 등은 모두 한 가지 컬러로 통일하는 게 그나마 공간을 산만하지 않고 정리되어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전기 선들이 뭉쳐져서 드러나야 한다면 컬러만이라도 맞춰 주는 게 좋다.
전선들이 잔뜩 모이기 쉬운 또 다른 곳은 주방이다. 주방 싱크 조리대 위나 아일랜드 위는 아무리 깔끔하고 미니멀하게 정리를 해 놓아도 식사 준비를 하려고 요리에 필요한 주방 가전들을 하나 둘 꺼내 올려놓다 보면 작업해야 할 조리 공간들은 순식간에 덩치 큰 가전 기구들과 전선 꾸러미들로 꽉 차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전기밥솥을 비롯하여 에어프라이어며 각종 믹서, 블랜더들과 토스터기 핫팟 등 매일 자주 사용해야 하는 이런 종류의 주방 가전들은 사용 후 정리해서 제자리로 갖다 돌려놓고 넣었다 꺼냈다 하기가 번거로운 것들이라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오픈 수납되어야 하는데 불과 물을 쓰는 주방 공간에서 전선 꾸러미들은 위험천만한 것이니 조리대 위가 아닌 곳에 따로 수납장을 마련해서 전선 꾸러미가 안보이면서도 오픈 수납이 가능한 ‘반매립’ 상태가 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아무리 방 천정마다 에어컨을 매립으로 만들어서 깔끔하게 숨겨 주어도 더울 때 하루 종일 코앞에 켜놓게 되는 것은 에어컨이 아니라 작고 부담 없는 선풍기이며, 크고 근사한 액자형 벽걸이 티브이가 있어도 뒹굴뒹굴 누워서 아이패드와 핸드폰 앱으로 보는 영화가 더 재미있으니 새로 나오는 가전 신상품들은 한번 충전하면 몇 년쯤 재충전 없이 사용 가능한 배터리를 개발해 주어서 옥에 티 같은 충전용 전선 꾸러미들도 내 공간 안에서 사라져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판촉물은 공짜가 아니다
주거 공간에는 눈에 거슬려서 편안한 분위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전자 제품 말고도 많다. 돌잔치 답례품으로 받아오는 ‘첫돌’ 문구가 정성스레 수놓아진 타월이나 동네 빵집에서 오픈 기념으로 나눠주는 판촉물 머그컵, 10주년 기념으로 ‘ㅇㅇ슈퍼마켓’ 문구가 프린트된 쟁반이나 각종 플라스틱 아이템들, 해마다 설이면 은행에서 나눠주는 ‘ㅇㅇ은행’ 달력이나 판촉물 벽시계, 각종 경조사나 이사 한 집에 배달되는 축하 화분 등등... 나는 타월이나 수건 같은 페브릭 소품들을 참 좋아하지만 돌잔치와 결혼식 기념품으로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자수가 놓인 타월을 받아오면 참 난감해진다. 남들이 게는 좋은 날을 기리는 물건인데 처음부터 걸레로 사용하기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내 욕실에다 걸어 두기는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심지어 걸레로 쓸 때도 자수 부분은 여러모로 걸리적거려서 가위로 잘라내어야 한다). 좋은 날을 진심으로 오래도록 기억해주길 원한다면 자수로 수놓는 인사말은 제발 생략해 주면 좋겠다. 은행에서 나눠주는 판촉물 달력 또한 아깝기는 마찬가지다. 번쩍거리는 고급 아트지 위에 총천연색으로 프린트된 풍경사진과 은행의 브랜드 로고가 그려진 달력들. 우리 집에선 삼겹살 구울 때 튀는 기름 받침용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긴 하지만 환경오염 차원에서 본다면 이 또한 얼마나 큰 낭비인 건지. 그렇다고 벽에 걸어 둘 수는 없고, 연말이면 아무리 안 받으려 해도 집에 쌓이게 되는 게 이런 판촉물 달력과 다이어리들이다. 그 본래 쓰임과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은행 달력을 비롯한 온갖 판촉물들은 아름다운 공간을 못생기게 만들고 공들인 인테리어를 훼손하는 일등 공신이다. 공짜라는 이유로 쉽게 받아 오는 이런 물건들이 내가 아끼는 공간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더 이상 공짜는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는 주거공간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리모델링 관련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 디자인보다 먼저 분리수거와 정리정돈 작업을 우선적으로 한다. 집안에 전체 디자인 흐름을 방해하는 이런 아이템들만 치우고 버려도 공간이 훨씬 깨끗해지는 경험을 많이 해 봤다. 특히 판촉물 아이템의 꽃이기도 한 축하 화환이나 화분들은 정말 애물단지인 경우가 많다. 판촉물 물건들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식물 화분은 생물이니 버리거나 훼손하기가 참 어렵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소중한 것이니 맘에 안 들어도 죄책감에 치워버리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한 집에 보내는 축하 화환은 의미까지 특별해서 집안에 행운을 가져다준다거나 부자가 되게 해 준다고 하니 더더군다나 처분하기가 힘들 것이다. 게다가 축하화분은 식물 그 자체 보다 화분이 더 심각한데 알록달록하거나 번쩍거리는 부담스러운 소재의 화분들은 그 무게도 무거워서 분리수거하는 마음을 참 무겁게 만든다. 기념 화환이나 판촉용 선물들을 보낼 때는 내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먼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호접란의 진핑크색이 선물을 받는 상대방의 공간에 잘 어울리는지, 그 상대가 좋아하는 컬러인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처분하기도 힘든 비싼 화분을 내 눈에 보기 좋다고 턱 보내 주는 일은 공간에 대한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에겐 ‘테러’에 가까운 큰 고민거리가 된다. 개인의 공간에 대한 취향이 뚜렷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이 미덕인 미국인들은 축하 화분보다는 작은 꽃다발 선물을 더 자주 주고받는다는데, 받았을 때 기분 좋게 즐길 수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수명을 다하여 죄책감 없이 버릴 수 있는 꽃다발이 화환이나 화분보다 훨씬 더 사려 깊은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할수록 아름다운 소모품 패키지
자리를 못 찾고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온갖 종류의 청소 용품들도 주거 공간의 평화로운 인테리어를 방해하는 요소중 하나이다. 청소 도구들은 욕실용, 침실용, 베란다용, 주방용 등등 공간별로 기능이 다 다른 것들이 따로 필요하기 때문에 각 공간마다 감출 수 있는 수납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할 경우 청소용 세재나 도구들은 집안 여기저기에서 길을 잃고 굴러다니며 조화로운 공간의 질서를 방해한다.
마트의 세제, 청소용품 랙에 가보면 그 종류가 너무 많고 소비자들에게 선택되기 위해서는 패키지가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하니 점점 더 요란하고 화려해지고 있다. 이런 과대 포장은 지구를 더 많이 오염시키는 건 물론이고 알록달록 튀는 컬러와 디자인은 주거 공간의 단정한 조화로움까지 위협한다. 이런 종류의 소모품들은 제발 정부에서 패키지 디자인 컬러를 제한시켜 주면 안 되나 싶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라 나는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상업 공간 스타일링 작업을 할 때는 마지막에 반드시 쓰레기통, 비누곽, 수세미, 행주, 고무장갑, 세제, 물비누 등등의 청소도구들과 각종 수납 용품까지, 주변 인테리어 컬러를 해치지 않을 단정한 모노톤으로 맞춰서 구매 해 세팅해 놓는다. 자칫 잘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공간에 이런 작은 소모품 패키지들이 들어오면서 공간 전체를 조잡하고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쓰레기통은 집 안에 한 곳에만 두자
그중에서도 가장 거슬리는 것 중 하나는 쓰레기통이다. 쓰레기통처럼 생존의 냄새가 너무 강한 아이템들은 특히나 거실같이 포멀 한 공간엔 어울리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보이는 공간은 어딘지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 들고 사실 쓰레기통 디자인을 멋지고 미래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어울리지도 않는 데다 단가가 낮은 아이템이니 고급 소재를 쓰기도 어렵다. 아무리 단정하게 만들려 해도 스테인리스 컬러나 무채색의 플라스틱 정도가 최선인데,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리스나 정전기까지 심한 플라스틱 같은 것들은 집 안에, 특히 거실에 사용하기는 좀 품위가 없어 보이는 소재들이다. 가끔 물기 있는 쓰레기라도 생길까 해서 감싸 넣어 둔 비닐봉지가 불쑥 삐져나와 있으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데다 견물생심이라고 안 보이면 안 만들 것도 눈앞에 쓰레기통이 보이면 쓰레기를 만들고 싶어 지니 쓰레기통이 존재하는 순간 그 주변에는 항상 지저분한 쓰레기들이 쌓이게 될 것이고 빨리빨리 비워주지 않으면 안 좋은 냄새도 나게 된다. 쓰레기통은 집 안에(집이 아무리 넓어도) 한 군데만 있으면 충분하다. 각자의 방이나 화장실 등에서 한 두 개씩 생기는 쓰레기들은 한꺼번에 모아서 부엌이나 다용도실 등 분리수거함과 함께 있는 쓰레기통에 분리해서 버리는 일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쓰레기가 가장 많이 생기는 공간(음식물 쓰레기를 포함해서)인 주방 근처에 두면 좋은데 쓰레기통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싱크 하부장 안에 매립시켜서, 수납장 문을 열면 바로 쓰레기를 버릴 수 있도록, 원터치 방식으로 제작하면 가장 좋다.
세면대 위나 싱크대 위에 항상 나와 있어야 하는, 자주 쓰는 세제들은 깔끔한 디스펜서 병에 덜어서 쓰기를 권한다. 그 편이 대용량 세제를 습기에 노출한 채 오래 쓰는 것보다 오염도 덜되고 인테리어도 방해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 매일 신경 써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살려면 청소도구들을 쉽게 손이 닿는 곳에 오픈 수납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알록달록한 패키지의 청소용 세제와 도구들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면 청소를 하고 싶던 의욕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휙 쪼그라들어 버리게 될 것이다.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빨래건조대
생존의 흔적이 많이 드러나는 살림살이 중에 빨래 건조대가 빠질 수 없다. 여러 가지 색상과 형태의 옷가지들이 반듯한 모습으로 옷장 속이나 행거에 걸려있어도 전체적인 조형미는 그리 아름다울 수 없을 텐데, 세탁기 속에서 물에 빠진 생쥐처럼 풀이 확 죽어 잔뜩 헝클어진 채 축 쳐진 모습의 빨랫감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빨래 건조대는 아무래도 좀 ‘모양 빠져’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빨래가 다 걷혀서 혼자 덩그러니 남은, 뼈만 앙상한 빨래 건조대와 세탁소용 철사줄 옷걸이, 알록달록 빨래집게들은 삶에 찌들고 가난한 집을 표현할 때 동원되는 빈티 나는 연출 도구들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날씬한 접이식 빨래건조대를 무척 자주 애용하는데 안 예쁜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를 정리하기 전에 이불을 털어 건조대에 잠깐 널어놓고 (이불속 통풍을 위한) 퀵 드라이를 할 수도 있고 샤워 후 사용한 젖은 타월을 펼쳐 널어 말리기도 좋다. 겨울날 밤에 콧속이 말라서 아프도록 건조한 날은 빨래건조대를 침실에 두고 빨래를 널어놓거나 젖은 타월을 몇 장 걸어 놓으면 가습기를 안 켜도 건조해서 급노화 되는 피부를 보호할 수 있다. 무게가 가벼워 이동도 편리해서 따뜻한 날은 빨랫줄이 없어도 베란다에 펼쳐놓고 햇살 아래서 빨래를 말릴 수 있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실내 어디든 옮겨 다니며 건조할 수 있다. 게다가 빨랫줄은 빨래집게 자국을 남기고 니트류나 천연섬유들은 축 쳐져 버려서 널어놓기가 힘들지만, 살이 촘촘하고 윗부분이 가로로 평평하게 펴지는 조립식 건조대를 트랜스포머처럼 익스텐션 시켜서 펼쳐 놓으면 늘어날까 걱정되는 예민한 원단의 빨래들도 평평하게 눕혀서 널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자국도 안 남고 구김을 안 만드니 다림질도 따로 필요하지 않다. 특히 캐시미어나 울 같이 열에 민감한 고급 원단들은 건조기 사용이 절대 불가능하니 이 올드한 방법의 건조법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전기를 절약하고 이산화탄소를 줄여 환경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나 유용하니 아무리 못생겨도 포기할 수가 없어서(아름답지 않으면 아무리 기능이 뛰어나도 내 공간에 들이지 않는 게 내 철칙이지만), 이 접이식 빨래 건조대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다(사용하지 않을 때는 잘 접으면 얇아져서 가구들 틈새에 쏙 들어가 수납하기도 쉽다). 얼마 전엔 우드로 만든 작고 이쁜 접이식 빨래건조대를 하나 찾아냈는데, 소재가 나무라 그런지 혼자 펼쳐져 있어도 그다지 못생기지 않았길래 침실에서 가벼운 물건의 거치용으로만 사용하면 좋겠다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얇은 우드 소재라서 크고 무거운 빨래는 널기가 힘들 것 같지만).
언젠가 아름다운 파리채를 디자인했던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 스탁님이 이번에는 어디에 세워 놓아도 조각품처럼 아름다운 모습의 싸고 멋진 ‘불란서째’ 빨래건조대를 디자인해서 전 세계에 대량 생산으로 보급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