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더 나은 전문가가 될 것인가
상상
이백 년 전에는 목수와 석공만 있으면 대부분의 주택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창문과 문, 수도시설, 조명과 보일러를 다루는 전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벽난로만 다루는 전문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 제조업체의 그 누구도 혼자서 자동차를 조립할 순 없다.
건축이나 자동차 뿐 아니라 의료에서도 ‘제네랄리즘’ 또는 ‘제네랄리스트’는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사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나이가 들면 백내장도 생기고 무릎 관절도 닳고 혈압도 높아지지만 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의사는 TV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응급실에서는 필요하다. 모든 걸 할 줄 아는 의사가 아니라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감독해 줄 의사 말이다.
다발성 외상 환자를 한 명 상상해 보자. 이십 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자동차와 부딪혀 내원했다. 안면이 부었고, 왼쪽 쇄골 근처와 흉곽 아래쪽에서 복부쪽으로 손바닥만한 찰과상이 있다. 오른쪽 허벅지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심하게 다리가 뒤틀려 있다.
다발성 외상 환자를 잘 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상상력뿐만이 아니다. 혼란스런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침착함과 오랜 시간을 견뎌낼 인내심도 함께 필요하다. 환자의 문제가 어느 정도 파악됐다면 검사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의사소통이 되다가 점점 의식이 흐려질 수도 있고, 통증 때문에 잠시 정상처럼 보였던 혈압도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갑자기 떨어질 수 있다. 모든 의사들은 자신의 과로 입원 되기 전까지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전제하에 일을 진행해야 한다. 기도유지가 잘 되는지, 출혈 부위는 없는지, 혈관확보가 필요한지, 경추 고정을 풀지 말지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응급의학과 의사다.
만약 운이 좋다면(?) 흉부 엑스레이를 찍은 후에 모든 게 결정이 돼 버릴 수도 있다. 왼쪽 늑골골절과 함께 장음영이 흉곽에서 발견된다면 횡격막 파열로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하나의 검사만으로 입원 과가 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장시간에 걸쳐 시행해야 결론이 나는 경우가 훨씬 더 일반적이다. 오늘 저녁 여섯 시에 온 환자가 내일 새벽 여섯 시가 되도록 입원 과가 정해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국 모든 과가 빠져나가면 응급의학과에서 입원을 시키기도 한다.
‘전문화된 일반의’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실현 불가능한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외래로 약을 타러 자주 병원에 들르는 사람들조차도 ‘전문의’가 ‘일반화’된 한국 의료시스템에서 ‘전문화된 일반의’가 대체 왜 필요한지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을 지을 때도 여전히 각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작업 전체를 꿰뚫어보는 솜씨 좋은 목수가 필요하듯 다발성 외상 환자에게도 침착하고 인내심을 가진 ‘전문화된 일반의’가 필요하다. 이들의 침착함과 인내심을 유지하려면 ‘스테잉 얼라이브’보다는 훨씬 긴 노래가 필요할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