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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May 29. 2024

수련

어떻게 더 나은 전문가가 될 것인가

수련     


다른 과들과 마찬가지로 응급의학과 또한 실력 있는 전문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통상적으로는 전공의 ‘교육’이라고 부르지만 내 생각에는 교육보다는 ‘훈련’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레지던트 과정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같은 것을 반복해서 익숙하게 만드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레지던트도 학생처럼 책도 읽고 저널도 발표하고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본다. 하지만 레지던트 수련과정의 핵심은 전문의가 되는 데 필요한 실무적인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지식은 책을 통해서 배우지만 기술은 책만으론 부족하다. 완전히 손에 익을 때까지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더군다나 중심정맥관 삽입이나 기도삽관 같은, 응급상황에서 빠르고 신속하게 시행해야 하는 술기는 어떤 상황에서든 백퍼센트의 성공률에 가까워져야 한다. 


반복 학습의 효과는 놀랍다.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 전문의가 된 후 몇 년 만에 중심정맥관 삽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 과정이 매끄러웠다. 기억상실에 걸린 특수요원 제이슨 본이 기계적으로 총을 조립하고 차 번호를 외우고 주변 사람들을 파악하는 것처럼 레지던트 시절에 익힌 술기들은 조건반사처럼 머릿속을 거치지 않고 기계적으로 손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1년차는 윗년차의 지도를 받으면서 술기를 익힌다. 누군가는 윗년차가 게으른 게 좋은 점도 있다고 했다. 결국 자신에게 기회가 많아져 술기가 금방 는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가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부지런한 윗년차가 좋은 아랫년차를 만들 가능성이 훨씬 높다.   


수련과정의 많은 부분은 사람을 통해서 전해지기 때문에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레지던트를 지원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건 ‘관계’였다. 이른바 의국 분위기, 일이 아무리 좋아도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만 득실득실한 곳에서 배우고 일할 수는 없었다.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수십 명의 교수들과 그 몇 배나 되는 층층시하의 펠로우와 레지던트들을 보유한 내과 교실과 비교하면 응급의학과는 지나치게 단출했다. 이마트 옆의 동네 과일가게 수준이라고나 할까? 교수님 세 분과 두 명의 펠로우 그리고 열 명이 채 안 되는 레지던트, 진짜 가족 같은(좋은 의미로!) 분위기였다. 그 시절의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해 죽을 것 같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너무 싫거나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의 집단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게 평가하기에는 훨씬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당시에 윗년차들은 타과와의 관계 형성이나 응급실 운영 방침과 같은 무형의 규칙들도 알려 주었다. 어쩌면 의국의 분위기라는 건 그런 무형의 것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같은 게 아닐까. 상대방의 기록보다는 자신의 소견을 믿고, 타과 레지던트와 보호자들에게 공격을 받는 인턴들을 보호하고,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을 포함한 다른 직역의 일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 말이다. 이런 규칙은 교과서에는 단 한 줄도 안 쓰여 있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규칙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의 원칙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같은 과를 선택하고 함께 일했다.  


개인적인 성향이겠지만 다른 직역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항상 서로에게 부탁을 주고 받는 사이이라면 더더욱. 학생 때 연극반을 할 때도 연기만 하는 건 적성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무대도 만들고 조명탑도 세우고 음향과 의상도 선택하고 홍보 전단도 나눠주고 등등, 이런 모든 일이 돌아가는 것을 관찰하고 관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연출을 택했다.

여러 병동에 흩어져 있는 환자를 보는 다른 과와 달리 한 장소에서 일하면서 환자를 보게 되니 다른 직역들이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좋았다. 특히 간호사들이 그랬다. 정치적인 의도로 갈라치거나 혹은 일부 사람들의 눈에는 서로가 으르렁대는 관계인 것처럼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서로를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겐 고3보다 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게 바로 응급의학과 1년차 시절이지만 그 시절에도 반짝이던 순간이 있었다. 전쟁 같은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회진까지 끝내고 나면 같이 당직 근무를 했던 인턴들과 인계를 마친 간호사들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원래 피곤하면 밥보다는 술이 잘 들어가는 법이어서 너나 할 것 없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주거니 받거니 알아서 마시고 목소리가 커져 조용했던 식당 안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모든 이들이 출근하고 있는 시간에 일을 마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오붓하고 시끌벅적한 휴식.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휴식도 그렇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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