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더 나은 전문가가 될 것인가
인공호흡
전선에서 부상을 입어 후방으로 후송된 ‘나’는 우연히 존 캐번디시를 만난다. 그와 얘기를 나누던 중 일흔이 다 된 그의 새어머니가 스무 살 연하의 알프레드 잉글소프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존 캐번디시의 초대로 스타일즈 저택에 머물면서 이 가족들 사이에 불길하고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인 천재 탐정(푸와로)과 고지식하지만 충직한 조수(헤이스팅스)가 등장한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일견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갈등이 하나씩 드러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세계관을 담은 최초의 장편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1920년에 출판됐다. 갑자기 추리 소설 얘기를 꺼낸 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한 장면 때문이다. 잠자리에 든 잉글소프 부인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후에 무반응 상태가 되고 의사인 바워스타인 박사는 부인의 두 팔을 붙잡아 세차게 움직여 인공호흡을 시행한다.
최근에 다시 번역이 돼 구매했다. 의사가 되기 전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다시 읽다 보니 무슨 인공호흡법인지 궁금해졌다. 사파가 노르웨이 고스달에서 구강대 구강 호흡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때 만난 비욘 린드는 당시에 초등학교에서 인공호흡법을 교육하고 있었다. 팔을 올리고 등을 눌러주는 홀거-닐센 호흡법이었다. 하지만 이 호흡법은 1930년에야 등장하기 때문에 바워스타인 박사가 시행하고 있는 건 그보다 더 전에 하던 실베스터법이다. 환자의 등이 땅에 닿도록 누인 다음에 양팔을 양옆으로 팔벌려뛰기를 할 때처럼 올렸다 내리는 방법이다. 지금 보면 대체 저렇게 해서 무슨 인공호흡이란 게 될까 한심한 생각이 들지만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차세계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는 실베스터법이 유일한 인공호흡법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자면, 실베스터 법으로 인공호흡을 시행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망했을 것이다. 만약 살아난 사람이 있다면 원래 아무 처치 없이도 살아날 사람이었을 것이다. 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등을 대고 누우면 기도가 막히기 때문에 인공호흡 이전에 기도유지가 필요하다. 이후에 1930년대에 등장한 홀거-닐센 법은 환자의 배가 닿도록 눕혀서 시행하는 것으로 기도유지를 시도했지만 이 역시 전혀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사파는 두 방법 모두 환기가 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결국 현대적인 심폐소생술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기도유지법(머리를 젖히고, 턱을 올리고, 턱을 당기는)을 해야지만 기도폐쇄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사파가 제시한 심폐소생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면서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기도 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왜 흉부압박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궁금할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에는 흉부압박이 없었기 때문이다.
1958년 심실세동과 제세동을 연구하던 존스홉킨스의 병원 쿠벤호벤 팀의 엔지니어였던 니커보커는 실험동물이었던 개의 흉곽을 제세동 패들로 누를 때 의미있는 동맥 파동이 발생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쿠벤호벤 팀은 이 발견을 임상실험으로 증명했고 심정지 환자들에게 개흉(open chest)을 하지 않고도 맥박을 발생시킬 수 있게 됐다. 이들의 발견 전에는 맥박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흉곽을 열고 심장을 직접 압박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조차 싫을 정도로 복잡하고 끔찍한 방법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방법이 유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