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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Jun 05. 2024

후송(2)

더 나은 전문가

후송


오후 4시 무렵 국군대전병원 지상 헬리콥터 착륙장에 도착했다. UH-1 헬리콥터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잔디가 출렁이고 먼지가 날렸다. 이송용 들것에서 헬리콥터 안으로 환자를 옮겼다. 11월의 저녁은 쌀쌀했고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더 추웠다. 

인천의 항구에 있는 착륙장까지 40분 정도 걸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에어울프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거야, 진료부장 말에 따르면 특수하게 개발된 헬리콥터가 아닌 경우에는 보통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착륙해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로 환자를 옮겼다. 

하지만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돌아올 때까지 헬리콥터가 과연 그 자리에 있을까. 왜냐하면 조종사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옮기세요’와 ‘내리세요’ 외에 우리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적어도 언제 오는지 정도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착륙장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헬리콥터는 없었다. 구급차 운전사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몇 번 돌았지만 없었다. 결국 구급차는 돌려보내고 나와 의무병만 남았다. 


-전화했다며! 대전까지 걸어오라는 거야. 

박 중위가 쩔쩔매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열받은 내가 한참 퍼붓고 나니 충전 상태가 간당간당했던 휴대폰이 얼마 있다가 꺼져버렸다. 진료부장 말이 맞았다. 공군은 내려주면 끝이다. 그렇다고 공군에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천항의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나는 하얀 가운을 오른팔에 끼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나마 지갑이라도 챙겨온 게 다행이었다. 

“차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세 시간 정도 걸리지 말입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온 의무병의 표정이 밝았다. 하긴 주말에 내무반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바깥바람 좀 쐬다가 들어가는 게 전혀 나쁠 게 없었다.

“근데 최 대위님, 부대 가서 저녁 먹습니까? 도착하면 열 시 넘지 말입니다.”

의무병이 내 눈치를 슬쩍 살폈다.

“빨리 아무 데나 들어가자.”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연락을 받으려면 핸드폰 충전을 해야 했다. 근처 횟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조가 깨끗해 보이는 아무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방어회가 제철이라고 해서 회와 소주를 시켰다. 소주를 한 병 더 시켜서 절반 정도를 남기고 식당을 나와서 당구를 쳤다. 어차피 게임비는 내가 낼 거였지만 너무 상대도 안 되게 졌기 때문에 내기를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근처 부대에서 배차해 준 쓰리쿼터 트럭을 타고 열 시가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다.


보름 정도가 지난 후에 호준이 자기 때문에 고생했다면서 저녁을 쏘겠다고 했다. 영내에 있는 상가 안의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호준이 지글지글 기름이 끓고 있는 판 위의 고기를 몇 점 뒤집었다.   

“후송 간 애가 어떻게 다쳤는지 들었냐?”

“아니.”

호준이 무슨 비밀 얘기라로도 하려는 듯 갑자기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2층 폐쇄 병동 독방 앞에 헌병이 보초 서고 있는 거 봤지? 거기 있는 애가 가해자야. 정신감정 받으려고 후송된 거래.”

“정신감정?”

내가 소주잔을 비웠다. 호준이 술을 따랐다.  

“지난달에 신병으로 배치됐는데 얘길 들어보니 그 새끼 완전 싸이코패스야. 사회에 있을 때도 분노조절장애 비슷한 게 있어서 한두 번 상대방을 심하게 다치게 한 적이 있었나 봐. 이후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자신이 그 상황을 알아서 피해 다녀 별문제가 없었는데 군대는 빼박이잖냐. 피엑스병으로 배치됐는데 선임이 교육한다고 몇 번 갈구니까 그냥 벽돌로 머리를 찍었어. 여러 번 내리쳤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 미친 새끼가 피엑스에 불도 질렀어.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심신미약으로 빠져나가려고 정신감정 해 달라는 거겠지. 살인하는 놈 중에 제정신으로 하는 놈이 어딨냐?”


나는 끈 떨어진 공비가 될 뻔했던 그날의 해프닝을 얘기해 줬고 호준은 듣는 내내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전역하면 어떻게 할 거냐?” 호준이 물었다.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넌?”  

“당연히 펠로우 해야지. 외과 4년 마쳐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수술 별로 없다. 끽해야 아뻬(충수돌기 절제술)나 라이트 헤미(우측대장절제술) 정도?. 탈장, 치루 수술처럼 간단해 보이는 것도 레지던트들에게 거의 기회가 오지 않기 때문에 개업하거나 취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어. 응급의학과는 좋겠다. 전문의만 따면 어디나 취직할 수 있잖아.”

외과뿐 아니라 대부분이 4년 동안 수련을 받아도 극히 일부만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전문의가 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응급의학과는 그렇지 않다. 기도삽관과 중심정맥관 삽입만 제대로 할 줄 알아도 거의 필요한 술기의 팔십 퍼센트를 익힌 거나 다름없고 거기에 흉관삽입, 기관절개술까지 익힌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아무도 전문의가 되면서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문제는 배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펠로우를 하는 게 회의적인 건 그 때문이었다. 펠로우를 해도 뭘 배우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건 의사로서 너무 무책임한 선택 같았다.


그날 밤 첫눈이 내렸다. 식당을 집으로 가는 길에 보니 아스팔트 위로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버스를 타러 나오니 자운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병산이 온통 하얬다, 마치 스스로 구름이라도 된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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