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뇨뇨 Jan 17. 2021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인생이라는 곡선을 구성하는 수많은 점들 중 후회보다는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간들을 되새기다 보면, 곡절을 견디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굴곡진 언덕의 내리막길에서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추억 속에서 얻을 수 있길.








인생이 고달파지면 대게 인간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업 준비로 인생의 즐거움이 사라지자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되짚으며 추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부터 2019년 여름까지. 어찌 보면 내 인생의 호(好) 시절이었던 일 년 간의 교환학생 생활. 한 달 남짓한 유럽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러시아와 영국에서 연이어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 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만 같은 해외여행이지만, 유럽에서 지내는 덕분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실컷 여행 다닐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탄 비행기만 해도 열세 번이 넘으니 말이다.



일 년을 내리 외국에서 지냈다. 중간에 한국으로 들어올 틈도, 돈도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살짝 늘어지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낯설었던 외국생활이었는데, 어느 정도 적응되다 보니 이제는 다 똑같고 비슷하게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했던 러시아에서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돈에 대한 강박이 커진 것도 한 몫했다. 돈을 아끼려다 보니 풍족한 여행자의 생활이 아닌, 한국에서의 현실적인 삶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모아뒀던 돈도 여행 한 번이면 다 쓸 금액이었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 학기만 지내는 친구들의 풍족한 경제상황을 보며 괜스레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다.



런던 테이트모던 앞 공원
런던 하이드 파크
런던 프림로즈 힐
상트페테르부르크 뉴 홀랜드 공원

무엇보다도 22-23살의 어린 나에게는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증이 컸다.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대신에 대외활동이나 인턴과 같은 각종 스펙을 쌓아야 할 것만 같았다.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투입된 돈과 시간에 대비해 무언가 결과를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물론 교환학생도 내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일종의 스펙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쉬고 싶다는 마음과 쉬면 안 된다는 생각 간의 충돌 속에서 뭐 하나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일 년이, 내게는 작은 공백기로만 느껴졌다. 이러한 마음이 점점 커져 두 학기 째부터는 자유로운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느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보면 외국에서 만 21-22세 밖에 되지 않는 참 어린 나이였다. 불안해 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사망년' '졸업반'이라는 명패가 떡하니 붙는다는 차가운 현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특히 쉬어감을 허락하지 않는 치열한 한국의 경쟁사회와 인스타그램 속 열심히 사는 친구들의 성과는 그 불안감을 키웠다. 내 나름대로 대학에 입학한 이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매번 대단한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더욱더 작아져만 갔다. 내게 주어진 일 년은 불편함을 남기는 자유였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함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음 한 편에 내내 쌓아두었다.


그래도 두려움 덕분에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어 자격증을 따고, 영국에서는 영어 공부와 평소 하고 싶었던 저널리즘 공부를 하며 좋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노는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며 멋지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 스스로도 교환학생을 하는 당시에도, 또 다녀와서도 습관처럼 "나 정말 후회가 없어!"라고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왜 이제와서야 후회가 밀물처럼 쏟아질까. 다녀온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내뱉는 말들은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담긴 말들 뿐이다. 방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빈둥거릴 시간에 운동을, 글쓰기를, 혹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일, 외국인 친구들을 더 많이 만들지 못한 일 따위가 후회가 되었다. 같이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들과 습관처럼 하는 말이 "우리는 참 재밌게 잘 놀다 왔다"이면서도, 한정된 시간에 모든 에너지를 쏟지 못한 일이 후회로 남았다. 하지만 과연, 그 누가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 수 있을까. 당시의 나는 내가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놀고, 공부하고, 쉬었던 것일 텐데.







왜 인생은 이처럼 후회의 연속일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들 투성이다.


스무 살 새내기 때 학점관리를 좀 더 철저하게 하지 않은 일이, 좀 더 다양한 대외활동에 도전해보지 않았은 일이, 누군가와 가슴 시릴 정도의 열렬한 사랑을 해보지 않은 일을, 좋았던 시절을 일기로 기록하지 않은 일을, 좀 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지 않은 일을, 필기 준비에 집중하느라 면접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일을, 어젯밤에 식욕을 못 참고 떡볶이를 먹은 일을.



인생이라는 곡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점들이 떠오를 때마다 요즘은 행복했던 혹은 슬펐던 기억보다는 못 이룬 일에 대한 후회들만 가득하다. 당시에는 분명 그 행동이 내 나름대로의 최선이었을 거다. 그리고 성정 자체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내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테다. 물론 지금 후회하는 대로 행동했으면 더 많은 결과물이 지금 내 손에 쥐어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내 후회만큼 열심히 살지 않지도,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지도 않았다. 결과물이란 상대적이라 누구보다는 많이, 누구보다는 적게, 딱 평균치에서 조금 나은 정도로 살아온 인생일 터이다.


결국 이 모든 후회의 근원은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없는데 100% 한정의 나에게서 120% 아니 150%의 결과물을 기대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모난 부분이 없는 완벽한 인생을 꿈꾸는 나 스스로의 헛된 기준 말이다.



한 번은 학교에서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상담 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말이 인상 깊었다.


"나은 씨, 사람은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이 될 수 없어요. 나은 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한 두 명일 뿐이겠죠. 자신과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존재와 끊임없이 비교하려 들지 마세요. 애초에 그렇게 될 수 없는 게임인데, 비교하면 결과는 뻔하잖아요."



당시의 내 결정은 분명히 최선이었을 거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여러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있으니 후회하는 거다. 물론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어른이 되었고 성장했으니 어린 날의 결정이 아쉬운 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지금은 농축된 경험들 덕분에 훨씬 성숙한 선택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고민과 후회를 반복하다 그때의 시간들, 과거의 시간들을 놓아주기로 결정했다. 바꿀 수 없는 일은 잊기로 했다. 그 시간에 지금의 나에게 집중해야 미래의 내가 할 후회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과거의 추억을 보고 행복함을 떠올리고, 또 앞으로 어떤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는지 반성해야겠다. 과거의 나, 미래의 나가 아닌 현재의 나를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자양분으로 작용되길.






그런 의미에서 신년 계획이었던 일기 쓰기와 여행 에세이 쓰는 것을 다음 주부터는 꼭! 시작하는 걸로!  









작가의 이전글 관음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