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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Nov 17. 2020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기



없다. 분명 이 자리가 맞는데. 아무리 기다려 봐도 오지 않는다. 내가 자리를 잘못 찾았나, 싶어 정류장을 다 둘러보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가 전원이 꺼져있었다. 종종 연착이 되는 회사니까, 아직 오지 않은 거겠지. 텅 빈자리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옆 자리의 버스가 오고 간다. 애석하게도 내 앞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버스를 놓친 거다. 이 중대한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꼬박 30분이 걸렸다. 나의 첫 유럽여행, 첫 나라의 마지막 도시였던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이렇게 꼬였다.


처음부터 버스를 놓치리라 생각하는 여행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후기를 보며 에이, 나는 그럴 리 없어하곤 무심하게 넘겼던 일이 화근이었을까. 단지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고려하지 못 한 내 순박함에서 시작된 판단 오류였다. 마드리드는 당일치기로 들린 도시였다. 그래도 수도인데, 구경해야지 하는 마음에 짧은 시간 동안 빽빽하게 돌아다녔다. 프라도 미술관 무료 개장시간을 꽉 채우지 않고 구경했더라면, 타파스를 먹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열차는 버스 출발 3분 전에 도착했고, 나는 전속력으로 뛰어 정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오늘, 버스가 그 드물다던 정시 출발을 해버렸고 그렇게 나는 낯선 도시에 버려졌다.


일차적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어버버 하며 공항을 배회하다 나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자 왈칵 울음이 나왔다. 동양인, 그중 여자라곤 나밖에 보이지 않는, 말도 안 통하는, 이 커다랗기 만한 공항에서 나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지던 도시였다. 첫 인종차별을 당한 날이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시내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저렴한 호스텔이 위치한 도시의 뒷골목에 가느니 안전한 공항에서의 노숙이 더 나아 보였다. 날려버린 숙소 값과 버스비도 괜히 속상했다.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괜히 눈에 띄일랴 크게 울지도 못하고 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5분이나 지났을까, 직원이 내게 괜찮냐며 말을 걸어왔다.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카운터 쪽을 계속해서 가리켰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내 울음을 그친 나는 서둘러 교통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 평생의 소원이었던 유럽여행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일정을 재점검하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가능한 행선지들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원래 도착지까지 가는 아침 비행기가 있었다. 13만 원 정도로 크게 부담되는 금액도 아니었다. 쇼핑 따위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다. 아, 나는 7시간만 버티면 포르투로 갈 수 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사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이고 버스를 놓치고 기차를 놓쳤다. 자의든 타의든 내 예상과는 다른 위기는 항상 길 위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마드리드에서의 교훈을 떠올렸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행의 기본은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다. 어디를 다음 행선지로 정할 지에 대한 판단을 먼저 내려야 한다. 여행에서 꼬인 일정을 푸는 것은 여정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수정 가능한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염없이 울다 시내로 돌아가고, 다음날 14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면 나는 아마 포르투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보지도, 인생 첫 서핑을 하지도 못했을 거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다음에 나아갈 길이 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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