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뇨뇨 Nov 17. 2020

D의 이야기

시선에서



“모하마드, 그럼 네 꿈은 뭐야?” A의 질문에 그는 짐짓 단호한 얼굴로 “나는 한국 여자나 일본 여자랑 결혼하고 싶어.”라는 충격(?) 발언을 했다. 우리는 모두 당황해 토끼눈을 뜨고 그에게 연신 “왜?”라고 물었다. 모하마드는 멋쩍게 웃으며 서툰 영어로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사실 그의 진짜 꿈은 모로코를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인즉 모하마드는 모로코의 원주민 격인 베르베르족인데, 이들은 이슬람이 사회를 장악하면서 하층 계급민으로 전락하여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막에서 평생 사는 것에 감사하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이 젊은이는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먼 원시적 사막을 혐오했다. 대신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접하는 선진국의 삶에 대한 열망이 컸다.


현실적으로 그의 꿈이 이루어질 리는 만무했다. 합법적 통로로 탈출할 돈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불법을 택해봤자 거리의 협잡꾼이나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꾀가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통해 비자를 받아서 모로코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원대한 결혼 계획을 듣고서 마음 한 편에선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이내 이해하게 됐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나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결혼 계획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계층상승의 욕구였다. 인간이라면 사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는 근원적 욕망이지 않은가. 방법은 제각각이겠지만 제 나름대로의 탈출구를 찾는 모습이 사실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 또한 로또 당첨이나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어 본 적이 있었기에.


밤이 깊어졌고 어느새 가져온 와인이 동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다섯 명은 전문가인 모하마드의 안내 하에 사막의 별을 보러 나갔다.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부드러운 모래바닥 위를 일부러 뒹굴기도 하고, 성인 다섯 명이 카펫 위에 엉켜 누워서 쏟아질 것만 같이 빛나는 별 이불을 덮기도 하고, 술에 취해 각자 할 말만 내뱉으며 실없이 킬킬대기도 했다.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던 순간을 만끽하다 각자 조용히 감상에 젖었을 때 모하마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마워. 내게 이렇게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줘서. 아마 나는 너희를 그리고 이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순간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한 모래 알갱이들과 함께 억지로 삼켜내었다.


사막에서의 기억이 흐릿해지고 일상에 찌든 無낭만 대학생으로 돌아왔을 때 즈음, 난민 이슈가 도마에 올랐다. 나는 난민 수용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유럽에서 만났던 나쁜 난민들 때문에 타지에서 겪었던 위험을 내 삶의 터전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다는 배타적인 마음이 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막에서 삼켜냈던 생각이 역류했다. 제3세계 젊은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새로 얻은 깨달음. 잊고 지내던 모하마드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르면서 내 자신에 대한 역겨움이 올라온 것이다.


내가 그때 사막에서 생각을 삼켜낸 이유는 내 얕은 감정이 혹여나 그에게 동정심으로 여겨질까 겁나서였다. 그 역시 사랑에 서툴고, 친구들과의 술 한 잔에 기뻐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깡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끼 많은 젊은이였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앞에서 내가 감히 어떤 편견과 선입견으로 그를 바라보았었고, 오늘의 경험으로 그것이 변화했는지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삼켜낸 생각들이 본래 내 생활로 돌아오자 오만과 함께 역류한 것이다. ‘나는 제3세계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는 사라져야 한다고, 그와의 만남은 내 편협한 시각을 넓혀주었다’며 자랑하던 내 꼴이 우스웠다.

 

그제야 나에게 그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모하마드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내 오만한 이해심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근원적 감정 때문이었다. 근원적 감정은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무형의 끈이다. 내가 처음에는 그의 결혼계획을 듣고 불쾌했지만 그것이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이해하게 된 것도, 처음 만난 우리가 같은 고민을 나누고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것도,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근원적 감정 덕분이었다.


우리 모두는 지나온 적이 없는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감정을 갖고 있다. 인간이라면 경험하지 않아도 갖고 있는 기본적 욕구와 감정들이 그것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어도 근원적 감정 덕분에 타인과 소통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혐오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건 이러한 근원적 감정을 되새기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C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