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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뇨 Nov 17. 2020

C의 이야기

시선에서



처음에는 귀가 따가웠다. 높낮이 조절도 못 한 채 내뱉고 싶은 대로 꽥꽥 지르는 소리가 귀에 콕콕 박혔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쾌쾌한 담배 찌든 내와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냄새에 나까지 취할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재채기를 하면서 뿜은 엄청난 양의 침방울을 보고야 만 것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혹시나 내게 침이 튀길까 서둘러 맞은편 자리로 옮겨갔다.

 

자리를 옮겼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노랫소리를 아무리 키워도 그의 목소리가 뚫고 들어와 소용없었다. 재채기도 여전했다. 그가 내뱉는 침방울이 직선이 아닌 포물선으로 하강하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제발 눈치 좀 채라, 하는 심정으로 째려보기도 했지만, 그는 내 쪽으로 절대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그는 내게, 그리고 다른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승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뒤에 붙은 ‘지하철 이용 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무색해질 정도였다. 민폐 승객과 외로운 눈싸움을 계속하다 이내 포기했다. 침만 튀기지 않기를 바라며 내 마스크를 괜스레 매만졌다.


금요일 밤, 막차에서 세 번째 전, 듬성듬성 있는 빈자리, 정중앙에 앉아있는 비슷한 모습의 50대 초반 아저씨 두 명. 술에 취해 목부터 벌게진 얼굴, 낮은 채도의 캐주얼 정장, 흙 묻은 로퍼.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들 아버지였다. 강제로 듣게 된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해봤을 때 민폐의 주인공은 옆의 남자보다 동생이거나 하급자였다. 그는 옆자리 형님에게 당신이 자신을 도와줘서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설파했다. 옆자리 아저씨는 상대적으로 점잖게 호응만 할 뿐, 그를 말리지는 않았다. 단지 상황이 민망한 건지 가슴팍의 검은색 서류 가방을 꼭 안고서 허허 웃기만 했다. 또 그는 사내 정치에 진물이 났다면서도 걸려온 상사의 전화에 취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당장 달려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부의 말은 잊지 않았다.


이상하게 대화를 들으면 들을수록 민폐 아저씨와 아빠의 얼굴이 겹쳐왔다. 아빠는 취했을 때면 내게 종종 술을 잘 마시냐며 묻곤 했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내가 술을 잘 마셔서 참 다행이라며, 너는 나처럼 어려움을 겪을 일은 없겠다고 씁쓸해하면서도 안도했다. 아빠는 능력도 많고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동심원의 상층부에 올라가기 위한 욕망으로 평생 일해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벽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들을 넘으려고, 아빠는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억지로 받아 마시곤 했다. 빽도, 연줄도 없는, 비명문대 출신 아빠에게는 딱 여기까지가 아마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것들에 지지 않겠다고 애썼지만, 결과가 아빠의 소관이 아닌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아빠는 매번 술을 탓하면서도 벌게진 얼굴로 들어와 엄마에게, 또 내게 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술에 취한 아저씨를 보며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동시에 비대면의 시대에 여전히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것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혹은 해방될 수 없는 것들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많은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과연 언젠간 사라질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언제쯤 술에 취해서 내게 술을 잘 마셔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이 자리를 떠난 건 세 개의 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었다. 민폐 아저씨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회사에 대한 희생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 그 역에서 바통터치를 하듯 아버지뻘의 취객이 또 탔다. 역시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비틀대며 통로를 돌아다니기만 했다. 모두가 다시 짜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와 닿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내 앞을 지나갔을 때 나는 쉽사리 그를 피하지 못했다. 그저 내 마스크를 매만지며 그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돌리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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