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다시 본 '아네고'
2005년 2분기에 방영된 드라마 '아네고'를 17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상사에서 10년째 근무하는 여주인공 노다 나오코의 부서에 10살 어린 남자 주인공 쿠로사와가 신입으로 입사하게 된다. 회사에서 노다 나오코는 노처녀라 놀림받으면서도 모두의 아네고(누님)로 활약하며 사랑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인다.
아네고는 대단한 오지라퍼다. 그 오지랖을 상사도 이용한다. 계약직 여직원을 지적해야 하는 상황에 대신 아네고를 불러내 잘못한 여직원에게 말을 잘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럼 그 여직원은? 당연히 아네고에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아네고가 일을 하다가 혹은 일상에서 힘든 일이 있는 계약직 여직원들을 챙겨준다. 때로는 탕비실에서, 때로는 점심을 따로 사주며. 그럼 직원들은 어느 순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아네고의 시간을 뺏는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팀원들을 챙겨주던 게 어느 순간 너무 당연해져 버렸고 그 과정에서 감정을 많이 다쳤다. 아네고는 이런 얘길 한다.
"제가 한 일이 결국은 쓸데없는 참견이었던 것 같아요. 그걸 오늘 깨달았어요. 다들 저를 누님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실은 그저 소심한 것뿐이에요. 혹시 남들이 싫어할까 봐 자꾸 착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 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아네고를 보며 나도 저런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한편, 과거의 내가 떠올라 그 오지랖을 넣어두고 자신에게 더 집중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10살 연하의 쿠로사와를 왜 밀어내는 건지 이해를 못 했던 과거의 나. 서로 좋아하면 만나면 되잖아? 하지만 이제는 가벼운 호감만으로는 미래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잠깐의 감정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상처받는 게 싫을 수도 있으며 주변을 납득시키는 것도 귀찮을 것이다. 하지만 10살 연하에게 급발진으로 프러포즈한 것도 이해가 된다. 상대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설렘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아네고는 잠깐의 불륜에도 빠진다. 여전히 불륜만큼은 절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불륜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릴 때는 절대 알 수 없었던 불륜의 소식들이 지금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더불어 주변에는 기괴한 연애 패턴들도 있었다. 17년 사이에 참으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목격했다.
아네고의 불륜 상대의 와이프인 사와키도 참으로 요상한 인물이다. 불륜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정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정신병력이 있어 남편과 아네고에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네고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질투의 모습을 내비친다. 일본인답지 않게 지나치게 거리를 좁혀오는데 회사에서 이 비슷한 사람, 나도 겪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업무적으로 전혀 겹칠 일 없는 부서로 입사했다. 오며 가며 인사만 했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업무 메신저로 메시지가 끊임없이 날아왔다. 같이 밥을 먹자, 일 고생한다, 간식을 가져다주겠다, 언제 퇴근하냐 등등. 처음에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메시지는 내가 야근 중에도 지속됐다. 야근까지 해가며 업무 중인 와중에 이미 퇴근한 직원의 잡담에 장단을 맞춰줄 여유는 없었다. 한 번은 업무 관련된 내용을 끈질기게 물어보기에 적당히 대답해줬더니 말을 이상하게 전달해 나를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딱 사와키 같은 사람이었다. 회사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나에게만 지나친 게 아니었다. 드라마를 보다 나보다 먼저 퇴사한 그녀가 갑작스레 떠올랐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쿠로사와 역의 아카니시 진만 보기에 급급했지만 어느덧 나는 아네고와 동년배가 되어보니 지금은 아네고와 그 주변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 이해라기보다는 '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만 숙성되었다. 17년이라는 사이에 드라마에 나오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나 또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사람들이 내 인생에 뛰어들어올까.
그나저나 사와키가 목에 건 반클리프 목걸이, 17년 전에는 지금보다 저렴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