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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Oct 18. 2020

도전과 변화혁신

빠삐용과 드가



K대 김 군에게 받은 메일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답신을 보냈다.


"좋은 시와 내용 잘 보았습니다. 메일을 보니 안타까움이 앞서네요.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란, 길들여진 익숙함으로부터의 탈출이며, 한계의 극복입니다.

만약에 학생이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바란다면,

거창한 미래를 말하지 말고,

오늘보다는 나아진 내일만 생각하시길 바래봅니다.

해답은 신기루와 같아, 늘 보이는 듯 하지만 다가서면 사라지는 것이지요.

현실 탈출이란 보일 듯 안 보이는 참으로 해괴한 놈이니, 아주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봅시다.

서로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먼저 영화 빠삐용 1973년판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빠삐용은 불어로 나비를 뜻합니다. 자유를 상징하지요.

스스로 먼저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소통의 시작으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악마의 섬, 그곳을 떠나라!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빠삐용"은 두 사람의 대비된 인생을 보여준다.


금고털이범 '앙리 샤리에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영화 속의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 정말 뛰어난 배우들이다.


악마의 섬. 육지와 격리된 가이아나 교도소의 섬. 이름만으로도 범죄자들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곳.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곳.


그곳으로 끌려가는 배에서부터 두 죄수는 서로에게 필요를 느낀다.


빠삐용은 생존에 능한 강인한 체력과 근성의 소유자로, 변호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살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수감된다.


백만장자 국채 위조범 드가는 안경 없이는 앞도 보이지 않는 나약한 사람이다. 게다가 흉악범들의 바다에서, 그가 부자인 것은 모두의 먹잇감으로 최적의 목표가 되었다.


빠삐용은 그를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드가는 생존과 탈출의 자금원이 되어 주기로 하며, 공생의 삶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끈끈한 동료애도 생겨난다.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하는 '빠삐용(스티브 맥퀸)'과는 다르게, 겁이 많고 나약한 '드가(더스틴 호프만)'는, 스스로 그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늘 빠삐용을 뒤따르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탈옥이 실패할 때마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갇혀, 몇 년 동안을 견디고 버텨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바퀴벌레도 잡아먹고, 좁은 공간 안에서 운동도 하며 애쓰지만,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어두운 독방에서 해제되는 날 시체처럼 실려 나오는 죄수들에게 햇빛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여러 번의 독방 생활과 마지막 탈출이 실패하자 악마의 섬에 유배된다. 탈출은 꿈꿀 수도 없는 조건을 갖추었기에, 간수도 없는 고립된 섬. 최악의 환경에서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죄수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스스로가 알아서 자급자족 생존을 해야 한다.


세월은 지나가고, 노인 된 육신은 걷기에도 버겁다. 그저 바닷가 절벽 끝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빠삐용은 조류의 흐름과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의 주기를 알게 된다. 목숨을 건 최후의 탈출 계획을 드가에게 말하며 동행을 권유한다.


드가는 또다시 위험부담을 감수하기보다는, 최악의 조건일지라도 현재 삶의 유지를 선택한다. 그러나 빠삐용은 바닷가 천 길 절벽 아래 바다를 향해, 야자열매 포대자루와 함께 몸을 던져 탈출에 성공한다.


그 마지막 장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슬로비디오로 보여주는 절벽에서의 투신 장면. 빠삐용을 보내며 뒤돌아 서는 드가와, 야자열매 포대자루에 몸을 의지한 채 망망대해를 떠가며 하늘을 바라보는 빠삐용의 표정.


메일 교환 후, 내 사무실에서 김 군과 대면 상담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 얘기로 첫 만남의 어색함이 누그러진다. 도전 의지가 전제되는 변화혁신의 필요성과 그의 현실적인 고민들 사이를 오고 가며, 대화가 무르익는다.


'빠삐용'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또 다른 주인공 '드가'의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 그가 선택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늘 두 가지 삶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현실 안주와 새로운 도전.


만약,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원하는 삶이 있다면, 삶의 방식에 변화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딛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도전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에 안주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피할 수는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수동적인 변화 혁신을 요구받는 것이다.


김 군에게 내가 경험한 사례를 하나 얘기해 주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IMF사태와 금융위기를 겪던 시절, 필자는 최고경영자로부터 '금융업의 위기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위기가 변화혁신을 강요하고 있던 시절이다.


금융업계의 큰 어른이며 일본통이셨던 대우증권 강창희 사장님의 도움으로, 일본의 금융기관들의 벤치마킹을 위한 일본 출장을 갈 수 있었다.


니코증권, 마쓰이증권, 다이이찌 투자자문 등 특징이 다른 7개 금융기관의 경영진들과 미팅을 하고 현장 답사를 했다.


현지에서의 매 시간은, 나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에서 만족하고 있었는 지를 깨닫고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마쓰이증권을 방문했을 때였다. 노무라증권의 M/S(시장점유율)를 추월한 증권회사라기에는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다.


전 직원 50여 명인 회사가 노무라를 이겼다고? 비결은 간단했다. 온라인 증권거래! 경쟁자들을 뒤쫓는 것이 아니라, 거래의 수단 자체를 바꾸는 변화혁신.


그것은 젊은 사장 마쓰이의 시대를 앞서는 혜안과, 위험을 감수한 온라인 거래 시스템에 대한 투자, 그리고 도전 의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오카산 증권은 위탁 전문 증권사이다.


그 시절 한국의 증권사들은 메이저이던 군소 증권사이던 모두 종합증권사를 지향하고 있었기에,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투자와 낭비가 많았다.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식이었다.


오카산 증권의 '선택과 집중'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증권업 종사자들의 근무방식도 충격이었다.


니코증권의 신주쿠 지점을 방문했을 때이다. 한국과는 달리 고객을 위한 객장이 없다. 창구 직원도 2명밖에 없다. 단지 고객 상담을 할 수 있는 작은 공용 부스 몇 개가 있을 뿐이다.


이게 뭐지? 당황스러웠다. 진짜 모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창구 옆의 문을 열자, 실제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중개인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마치 한국의 증권거래소를 보는 듯했다.


2층을 올라가자, 사무용 책상으로 가득 찬 엄청난 크기의 사무실이었는데, 직원들이 보이지 않고 고요하다. 모두 아웃 도어 세일즈를 나간 것이다.


그렇게 몇 층을 더 올라가자, 백여 명의 전화응대 직원들로 채워져 있다. 전화영업을 하는 콜센터인 셈이다.


니코의 신주쿠 지점은 지점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증권회사 본사 규모로 보였다. 우리처럼 동네마다 지점과 출장소가 있는 것과는 다른 시스템이었다.


지금은 한국의 증권사들도 유사한 사례가 많지만, 이미 변화되어있던 일본이나 국제 시장과 비교하면 우리는 변화와 혁신에 한참 뒤처져 있었다.


돌아와서 나는 몇 가지 핵심 포인트를 정리해 보고를 했다.


선택과 집중. 모두가 종합증권사를 지향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의 강점을 특화시켜야 한다.


시스템 혁신. Hub & Spoke전략을 통한 지점 체계의 재조정과 아웃바운드 중심의 영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거래 수단 개발. 대면거래 축소와 비대면 거래 선점을 위한 온라인 거래 시스템의 도입.


이 밖에도 세밀한 내용이 있지만 위의 내용은 몇 가지 핵심만 짚어 본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내용들은 경영진의 보수성과 직원들의 저항을 극복해야 하는 매우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변화혁신의 내용들이지만, 늘 그렇듯이 변화에 대한 저항은 혁신을 가로막는다.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늦게라도 위의 보고 내용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면, 변화란 생존을 위한 것이기에, 결국에는 해야만 하는 것임을 증명한다.


주도적으로 능동적인 변화를 할 것이냐, 뒤를 쫓으며 수동적인 강제적 변화를 당할 것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김 군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가지라 했다.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시간이 부족한 것을 아쉬워하며, 이후 만남에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무엇을 선택하던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다.


그러나 만약에 현재의 삶이 악마의 섬이라면,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얻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도전을 하여야만 한다.



변화 혁신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화학적인 바뀜이다.

필요는 변화 혁신의 이유이며, 그 시작은 도전이다.

도전은 익숙함을 버리는 과정이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뒤를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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