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의약품 주문하기

매주 화요일은 의약품을 주문하는 날입니다

by 가을웅덩이

매주 화요일마다 필요한 약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주문을 한다. 주중에 급한 약이 생기면 바로바로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화요일 주문하는 약은 목요일에 대부분 배달되는데 주문한 약들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다. 품절이 걸린 약들도 있고, 구해서 주는 약들도 있어서 몇 가지 품목은 며칠에 걸쳐 들어오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시작된 의약품 품절 사태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의약품 부형제의 공급이 부족하고 가격이 높아져서 한동안 품절이 잦았다. 그 이후에는 달러 환율이 높아지다 보니 의약품 원료 구입이 원활하지 않아 공급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적정량만 생산을 하고 있는 곳이 늘어서 매주 소량씩 들어오는 약 품목이 많아지고 있다. 보험수가가 낮게 책정된 약은 제조 허가를 취소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의약품 안전나라에서는 2023년 1월부터 공급중단의약품을 알려주고 있다. 품절이거나 중단된 약, 회수약을 알려주는 플랫폼이다. 병원 프로그램에 알림 창이 매번 뜨고 있는데 아직도 품절 사태는 여전하다.


약이 도착하면 수량과 용량을 점검하고 약장에 채워 넣는다. 월초에는 한 달 정도 쓸 수 있는 양으로 주문하는데 품절이 잦은 약은 한 두 달 정도 더 쓸 분량을 미리 주문하기도 한다. 무작정 재고를 많이 들고 갈 수는 없기에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 품절이거나 생산 중단된 약들은 대체약을 찾아서 주문하기도 한다. 아예 대체약이 없는 경우도 가끔 있다.


수액은 따로 주문을 넣는다. 2주에 한 번씩 창고에 들어갈 양만큼 주문을 하는데 명절이나 긴 연휴가 있는 경우에는 넉넉히 주문을 한다. 연휴가 길어지는 이 번 주에도 창고에는 수액이 빼곡히 차 있다. 수액도 품절이 걸리는 경우가 있어서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미리 주문을 하고 있고 장기 품절 품목은 평소 쓰는 양보다 더 주문할 때도 있다. 독감이 유행하거나 겨울이 오면 수액 주문은 품절 알림과 씨름을 한다.


처음 품절이 잦아질 때는 이러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재작년 말, 소화제로 한 달에 3000정 정도를 사용하는 약이 6개월 정도 품절된 적이 있었다. 한 달 정도의 재고를 가지고 있던 때라 대략 난감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동일성분 대체약들도 차례로 품절이 되면서 대체할 다른 성분의 약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작년 초에 다시 생산이 재개되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로 지금은 3개월 이상 쓸 분량의 재고를 항상 가지고 간다.


재고를 관리하는 일은 까다롭지 않다. 다만 품절로 주문한 약이 들어오지 않거나 사용 중단으로 재고가 소진되지 않을 때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 매일의 삶에서도 그렇다. 정해진 하루 일과가 뜻하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일그러질 때가 있다. 생각하지 않은 일이나 질병으로 계획했던 한두 달이 통째로 증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일들이 내 삶의 일부인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갈 수 있겠는가? 잔잔한 호수를 거닐기도 하지만 파도타기를 해야 할 때도 있고 동굴 속에 고립되기도 한다. 그 모든 상황에서도 나를 토닥이며 살아내는 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