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주말부부 1년째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은 두 달이다. 산내에서 머물다가 남편이 있는 수원에 다녀왔다. 시골살이를 시작하고 처음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머물고 온 것 같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이 확연히 비교될 만큼 몸으로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도시에 머물며 느낀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음이다. 소음이라고 하니 부정적인 어감이 좀 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가 밀접하게 들린다. 시골은 사람은 작고 자연이 크다. 그러나 도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발생하는 모든 소리가 존재한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 20년식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윗집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사람을 실어 나르고 타고 오르고 내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바퀴 소리, 물건 파는 소리, 발걸음 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노랫소리. 이에 따라 냄새도 다르다. 가볍고 빠르게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시골과는 다르다.
시골은 가끔 내 호흡 밖에서 들리는 고요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려 이어폰을 꺼내다가도 이내 산책을 하려고 길을 나서면 이어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걸을 때가 많다. 바람과 물결 소리, 새소리, 개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일렁이는 소리, 나뭇가지가 부딪치는 소리, 낙엽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 뭔가 생명이 지나가고 있는 소리.
무엇이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도시에 도착한 뒤 귓가를 맴도는 소리들이 낯설게 들리는 내가 낯설었던 것 같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만, 트레이더스도 가고 스타필드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에버랜드도 가고, 찜질방도 가고, 뷔페도 가고, 소비하기 좋은 곳에 머물며 별생각 없이 돈을 쓰고, 뒤돌아 서서 깜짝 놀랄 때가 더러 있었다. 도시가 소비가 쉬운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3차 소비자를 겨냥하여 보기 좋게 담겨내어 돈을 쓰기만 하면 쉽게 먹고 입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왜 시골이야
내가 시골행을 선택한 것은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차 소비자가 되어 보고 싶어. 뜬금없는 나의 말에 남편은 잘하는 거 하면서 살기도 모자란 인생이라고 천년송에 올라 말을 내뱉는 내게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농부가 되지 않는 이상 1차 소비자는 될 수 없다. 그러나 이곳에 머물며 농부가 아니더라도 옷을 직접 지어 입고,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 내어 먹는 사람들을 보며 1차 소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비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버려지는 쓰레기도 그렇다. 배달 한 번 시키면 쌓이는 스티로폼 더미들, 지금은 내 시간이 많아서 그걸 이고 지고 정리하고 테이프를 떼어 날짜 맞추어 내어 놓는 그 불편한 일상이 귀찮아서 자주 슈퍼를 들르게 되었다. 이틀 정도 먹을 것을 사고, 또 냉장고가 비면 사러 가고. 지역 상권이 살아 있기 때문에 농산물은 싸다. 제철 작물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렇게 나도 어쩔 수 없이, 불편하고 귀찮은 일상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살게 된 것 같다.
다시 도시로 간다면
남편이 왈, 군대에서 제대해서 일주일은 아침 7시에 일어나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똑같데.
나도 이번에 도시에서 지내며 역시나 소비 패턴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배달이 되지 않는 이 지역에서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시키느라, 외식을 하느라, 남편에게 이거도 먹고 싶고 저거도 먹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물론 여기서도 언제든지 원하는 것은 먹을 수 있지만, 배달과 밀키트는 자연스레 멀어지고 정말 삼시 세 끼를 열심히 해 먹고 있다. 계란, 두부, 양상추, 브로콜리, 양배추 같은 음식물은 동네 생협에서 사고, 그 외는 하나로마트 로컬 매장을 이용하고. 아이들은 아빠가 오는 주말을 기다리는데, 한 끼 외식을 할 수 있어서다.
큰 아이를 대안학교 보내고 부모로서 내가 원했던 것은 의식주를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자립심을 키우자는 거였는데, 이곳이라면 자연스럽게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도시와 시골을 갈라놓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시가 조금 더 소비하기 쉬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내가 스스로 자각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3차 소비자로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삶의 속도가 빠르고 개인의 여가 시간을 아끼기에는 소비만큼 편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곳에서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느껴지는 불편감을 느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 내야 할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이 생기는 것 같다. 이곳의 공동체성, 서로 돕는 대안적 삶, 마을 공동체 같은 것들이 무엇인지 이곳에 와서 나는 많이 배우고 익히는 것 같다.
이곳을 사랑하며
흙을 밟고 자연을 가까이 느끼며 나 스스로가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작고 산이 큰 이곳에서 자연이 주는 기쁨이 있다. 배달도 안 되고, 눈이 내리면 고립되는 이곳의 불편함을 경험할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느긋함이 쌓이는 것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