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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거나 Sep 12. 2021

다시 시작, 브런치

뜨거운 한 여름을 보냈다. 매일 블로그에 글쓰기 프로젝트도 참가했고, 브런치 작가님의 책을 읽고 3일간 서평을 쓰는 일도 참여했었다. 주말 동안은 그림책 연수도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시에서 주최하는 독후감 행사에 응모해 참가상일지 모르나 상도 받았다. 매일 글을 쓰고 있었지만, 나는 브런치에 글을 남기지 않았다. 브런치를 글 놀이터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남길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서평도 브런치에 남길 수 있었지만 나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거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을 선택했다. 나는 출간 작가도 아니고 글을 그냥 끄적이는 사람일 뿐인데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블로그, 인스타그램보다는 각을 잡고 써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남기기를 주저했다.

브런치에 글을 남기지 않았지만 작가와 줌으로 만나려고 했던 그날,  폐가 평소에 좋지 않았던 아빠가 기침에서 객혈이 많이 나온다고 전화가 왔다. 아빠는 평소 진료를 받던 병원 응급실을 갔지만 응급실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되어 응급실이 폐쇄되어 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의사 남편을 둔 친구에게 물어보니 객혈을 하는 것은 매우 응급 상황이라 했다. 평소에도 객혈을 조금씩 하는 것이 익숙한 아빠는 별거 아니라는 듯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아빠를 설득해 내가 머무는 지역으로 다음날 모셔왔다. 내가 머무는 지역 대학 병원에서 아빠는 검진을 했다. 틀니가 갑갑해서 착용하지 않고 사투리 억양이 센 아빠의 말은 내가 들어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의사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 대답을 분명히 해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대답을 시원하게 못했다. 평상시 아빠의 증상을 꾀고 있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곰 같은 성격에 살갑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친정에서 나는 아이는 부모님께 맡기고 부모님과 살가운 대화보다는 책을 잔뜩 빌려 읽고 물어보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것이 다였다. 부모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친정에서도 화자보다는 청자, 청자보다는 침묵하는 고요한 나를 좋아했다. 엄마와의 대화는 보다 활기가 넘쳤지만 가부장적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내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아빠의 모든 말에 말대 거리를 하고 싶지만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에 나는 친정에서 침묵을 택했다. 아빠의 병은 큰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받는 검진과 약 처방으로 유지되는 병인 줄 알았다. 아빠의 기침은 늑막염이란 병에는 으레껏 따르는 것, 냄새에 민감한 것은 꼬장꼬장한 아빠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의 몸은 서서히 나빠지고 있었다. 아빠의 폐는 부풀어 올라 심장을 짓누르고 있다. 의사도 몇 년이 남은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의사는 다행히 아직까지 쓸 수 있는 폐에서 피가 새어 나와 시술로 객혈 정도는 멈췄지만 이미 망가진 폐에서 피가 흘러나오면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남아있는 생이 길지 않은 아빠를 보면 짠하다가도 배려심이 1도 없고 늙어가는 아빠의 말에 군말 없이 모두 따라주기를 바라는 아빠를 보면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2주간의 입원 생활을 하고 아빠는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 있는 동안 아빠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이다. (빨리 치우지 않는다/배달을 왜 그렇게 자주 시켜 먹냐/정리가 안되어 있다. 바구니를 사라. 화장품 냄새가 너무 난다/ ) 도와주지는 않으면서 명령을 한다. 이런 아빠를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착한 남편 덕분에 나는 우리 엄마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아빠를 우리 집에 두고 내려간 엄마는 아빠가 걱정되긴 했지만 꽤 즐겁게 친구도 만나고 동생과 외식을 즐기며 하고 있다. 동생이 차를 끌고 주말에 아울렛에서 엄마 옷도 살 거라고 했다.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엄마는 항상 아빠의 주변에 머물러야 했다. 바깥 외출도 자유롭게 못했던 엄마였다. 모든 것을 아빠의 요구를 들어줬던 엄마! 아빠의 걱정이 엄마를 얼마나 옥죄는지 모르고 있는 아빠를 볼 때  또 화가 났다.

아빠가 입원해 있는 동안 브런치에 글을 읽고 쓰기가 쉽지 않았다. 퇴원을 하셨지만 내가 가고 싶은 독서 행사에,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눈치가 보여 쉽지 않았다.

방치한 브런치에도 구독자가 드문드문 늘었다. 죄송하고도 고맙다. 나의 글연들이 뿌옇게 되어 버렸다. 다시 재정비하고 싶다. 부지런한 작가님들 덕분에 나의 글 채무는 엄청나게 늘었을 것 같아 무섭다.

오늘부터 나는 다시 브런치에 마실을 나가려고 한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다시 끄적여보려고 한다.  가볍게 마음을 털지 않으면 브런치는 내가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릴 것 같아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여볼까 한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느지막이 일어나는 내 주말은 아빠가 있는 동안 사라지겠지만 엄마의 자유를 위해서, 친자식보다 곰살맞게 아빠를 대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애증 관계인 아빠와의 공존을 슬기롭게 모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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