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
아빠 뱃속에 올챙이가 있어.
근데 올챙이들이 달리기 시합을 해.
막 달리기 시합을 해서 동그란 데 도착해서
귀엽게 팡! 아기가 되는 거야.
달리기 시합을 한다는 말은, 승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남은 중요한 장면은 도착해서 "귀엽게 팡! 하고 아기가 되는 것"이었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 중에 이것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다. 탄생부터 경쟁에 노출된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왔던 나로서는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나 하는 걸 느꼈다.
얼마 전 아이의 운동회가 있었다. 유치원 운동회도, 초등학교 운동회도 최선을 다해 승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에 손뼉 쳐주고, 그저 잘했다고 서로를 응원한다. 예전엔 달리기를 하면 손등에 등수를 나타내는 도장을 찍어주는 게 너무 당연했었는데 이제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지는 게 너무 싫어서 너도나도 울음을 터뜨리고 분위기가 나빠지는 걸 염려해서 더욱 조심스러워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달라졌어도 여전히 아이들이 자랄수록 '경쟁' 구도 속에 놓인다. 성적에 비관하고 우울해지는 아이들이 여전한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입시라는 시스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모두 경쟁을 통해 주어지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등은 한 명만 할 수 있다. 참여하는 수많은 아이들 중 1등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모두 패배감을 느껴야 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모두가 인서울 명문대를 향해 달리지만, 그중에 우리가 흔히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인서울 입시에 성공하는 비율은 전체 수험생의 오직 7%라는 것을 책에서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10%도 안 되는 수치다. 조금 더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1등이 아니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달리기 시합을 하지만 그 결과는 귀엽게 팡하고 아이가 되는 것처럼, 모두가 힘껏 달리다가 모두가 아름답게 팡! 하고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