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의 시작
요즘 들어 지친다는 생각을 유난히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자꾸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생각뿐이고 내 생활태도는 변함없이 예민해져있었다. 남편도 남편대로 피곤이 쌓여서 집에 오는데 집에서는 너도 나도 다 같이 짜증 내고 화내는 게 반복되다 보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자기 고집이 강해진 우리 2호와 아빠가 부딪히고, 그럼 나는 짠한 마음에 2호는 감싸고 1호에게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럼 신랑은 1호가 짠하니까 2호를 혼내고 이 악순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내가 끊어야겠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의 행동에 반응하는 어른들이 문제인데, 신랑더러 바꾸라고 잔소리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은 내가 바뀌는 것이겠다. 그럼 내가 무엇을 바꿔야 할까. 내 고민의 답은 '감사'였다. 원래는 아이와 함게 감사일기를 써보고 싶어서 찾아보는 중이었는데 아이보다 내가 더 급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책에서 본 대로 감사일기를 쓰면서 내 삶의 감사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주말 내내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고, 고집대로 안 되면 화내는 아이의 모습은 여전했다. 그래도 어제 잠들기 전에 당장 실천해 보기로 했다. 놀이 시간이 끝난 아이에게 다가가 팔을 벌리고 말했다.
오늘 게임 더 하고 싶은 거 잘 참고 약속한 시간 잘 지켜준 거 고마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났다. 내 품에 안긴 채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게임 시켜줘서 고마워.
그 순간이 기적 같았다. 내가 고마운 걸 이야기하자, 우리 넷은 서로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면서 고마운 걸 말하자고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내가 먼저 감사를 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우리의 잠자리는 너무 화목하고 편안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눈으로 확인한 감사의 선순환에 시작부터 동기부여가 강하게 되었다. 감사일기를 위한 책을 읽었는데, 일주일 동안은 매일 20가지의 감사를 적어보라고 했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 의지적으로 감사를 찾아 쓰라는 것이었다.
매일 다이어리에 번호를 매기며 20개의 감사를 적었다. 정말 사소한 것들부터 하나씩 적어야 채워질 수 있었지만, 채우기 힘든 수준은 아니었다. 그동안 속으로만 생각했던 감사를 꺼내고 나니 일상에서도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신랑에게 뭐든 부탁하고 고맙다는 표현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고맙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잔소리만 쏟아내고 있었다는 걸 새삼 반성할 수 있었다.
매일 감사를 적는 것, 조금은 지루하고 당장 굉장한 변화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나는 짜증 내지 않고 감사하려고 하는데 아이는 여전히 기분에 따라 징징대고 짜증 낸다. 그래도 감사로 시작한 아침은 짜증을 좀 더 누르게 되는 나를 발견했다. 악순환을 끊어내는 건 한 사람의 다른 반응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왜 나만 해야 하냐고 원망하기보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시작할 수 있으니 감사하기로 한다. 나는 오늘도 감사를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