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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Mar 16. 2021

엄마, 그린 라이트야!

신호를 기다리다가


© pawel_czerwinski, 출처 Unsplash



"엄마! 빨간불에는 서야 돼!"

"맞아. 서는 거지?"

"그린이면 가!"

"그렇지!"


운전을 하다 빨간 신호등 앞에 서면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모두 펼친다. 그리고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면 가도 된다며 나의 운전을 허락한다. 


"앗! 그러게. 그린 라이트가 되었네!"

오늘도 액셀을 밟으며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든 생각. 그린 라... 이트? 한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신어로 알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면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연애하기 전 혹은 연애할 때 상대가 자신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신호.

 

영미권에서 허가, 승인이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연애와 관련,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신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2013년에 시작한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의 한 코너인 「그린라이트를 켜 줘/꺼 줘」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이후,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쓰이고 있다.

한편, 그린라이트는 국립국어원이 2015년 3월 발표한 2014년 신어로 선정된 바 있다.                  


글쎄. 나는 <마녀사냥>은 모른다. 단지 그린 라이트가 얼굴이 빨개지는 호감의 말이라는 것을 알 뿐이다. 몇 년 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한국에서 커피점에서 일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풋풋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그 날은 그 학생이 주문을 맡게 되었는데 남자 손님을 앞에 두고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지면서 까르르르 웃고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야?" 물으니 그린티 라테를 주문받고 손님한테 확인시켜준다는 것이 그만 "아, 그린 라이트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꾸해 버렸다는 거다. 사태를 파악한 그 친구는 갑자기 혼자 웃음이 터져 버렸던 거고, 남자 손님도 민망했는지 팔뚝으로 얼굴을 가리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같이 웃으며 분위기는 더 재미있으면서도 묘하게 고조되었다. 그런데 웃으면서도 웃지 못했던 건 나였다. 전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린티 라테를 그린 라이트로 잘못 얘기한 게 뭐가 웃기지?'


당시 미국에서 살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가 살 때였기에 그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유행어는 더더욱 그랬다. 나야말로 나중에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뒤늦게 또 혼자 낄낄댔는데 너무 웃겨서 계속 웃는 줄 알고 아르바이트생들이 같이 또 웃기 시작했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일 하자! 얘들아!)


잠깐의 대기 신호 앞에 그 일이 떠올라 또 혼자 웃었더니 아이가 뒤에서 발까지 구르며 말한다. 

 "엄마! 그린 라이트라고!"


맞다. 살면서 기분 좋은 건, 누군가 나에게 길을 허락하며 열어 주었을 때다. 브레이크에서 잠시 머물던 나는 액셀을 밟으며 신호가 주는 허가에 신나게 달렸다. 사람도 누군가 나에게 그린 라이트를 날릴 수 있다. 물론 나의 경우 아줌마가 되니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있게 된다면 내가 감사장을 수여하고 싶다.) 어쨌든 그 그린 라이트는 이런 의미가 아닐까? 당신! 나에게 질주할 기회를 주겠어! 나는 그만큼 당신에게 호감이 있거든! 


설레고 떨리는 연애의 감정은 이제 나에게 안정된 감정이 되고, 호감은 깊은 교감과 정으로 바뀌었지만 젊은 세대들의 그린 라이트를 정말이지 응원하고 싶다. 나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이래서 포기, 저래서 포기보다는 서로를 조금 더 낫게 끌어 줄 수 있는 연애의 감정을 충분하게 맛보았으면 좋겠다. 그린 라이트가 켜지는 걸 상상하면 괜스레 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연애가 참 예쁜 걸 보니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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