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앤 Jul 22. 2022

당신은 누구와 점심 약속을 하고 싶은가?

생각의 힘, 호모 콰렌스를 생각하며

 "당신은 누구와 점심 약속을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은 꼭 밥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을 묻기보다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다. 대화하며 상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해야할까. 나는 그 상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아빠다.


 [EBS] 지식채널 제작팀에서 생각의 힘이라는 책을 기획했다. 글씨도 크고 손안에 가볍게 들어오는 작은 크기(일반 책 규격보다 작다)의 책인데 막강한 생각의 힘을 보여줄 것 같아 16,000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서점에서 사 왔다. 물론 한국에 머물 때의 일이다. 나는 이 책을 미국에서 선박으로 받았다. 미리 책과 겨울 옷을 박스에 넣어 내가 사는 미국 집으로 선박 소포를 보낸 것이었고, 그것을 며칠 전에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보낸 소포를 받기까지는 딱 3개월이 걸렸다. 우체국에서 보낼 때 직원이 말했다. 


 “소포는 빠르면 3개월, 늦으면 6개월 이상도 걸릴 수 있답니다. 동의하시죠?” 


 6개월 정도는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받았다. 책의 마지막 파트를 보면 질문과 하브루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 또한 질문을 좋아한다. 삶에 던지는 모든 것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팀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늘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어떻게'를 만들며 살았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해 얼마큼 아는지 모르며, 그리하여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흥미로운 건 스티브 잡스가 점심을 함께 먹고 싶은 인물이 있었다는 건데, 바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소크라테스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강조했던 스티브 잡스가 “그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기술과 바꾸겠다"라고 말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생각의 힘] p. 255


 인간에 대한 이해에 대해 그와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나 보다. 현대 사람들은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열망한다. 물론 그가 경매를 통해 자선 사업 이벤트를 직접 벌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경매는 1,900만 불이나 되었다는 건 실로 놀랍다. 

 유대인의 질문과 토론은 이미 유명하다. 나도 4살 아이의 책을 읽어주면서 계속적인 물음을 아이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만약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은데?” “이유가 뭐지?” 아이이다 보니 그런 질문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의 생각은 늘 흥미롭다. 나도 그걸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람마다 각기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에 따라 점심을 누구와 함께 하고픈지 갈리지 않을까 생각하니 ‘나 자신'이 궁금해졌다. 그럼 나는 과연 누구와 점심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을까? 길면 2시간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몰입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보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점심식사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간단한 차와 쿠키면 되겠다. 무엇을 먹든지 그게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혹 먹는다 쳐도 맛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누구랑 점심을 할까, 즐거운 상상이 오고 갈 수도 있는데 나는 조금 슬프다. 소크라테스처럼 세상에 없어서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8살 때 그러니까 쌀쌀함이 몰려오는 11월 어느 날에 생을 마감한 아빠다. 자연을 벗 삼고 노래했던 그의 모습은 여전히 젊은지 여전히 시적인지 만나보고 싶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어렸던 아빠의 마지막 길은, 차가운 눈 속에 몸을 던진 것 마냥 그렇게 춥기만 했을까? 천사가 데리러 왔다며 날숨 한 번으로 생을 마감했을 때 천사의 따뜻한 손내밈을 받지 않았을까? 세상에 살면서 가져본 적이 없는 따뜻함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그건 아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아니다. 혼자의 질문으로 그리움을 표현한 것뿐이다.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에 대해 심오한 물음을 가지고 소크라테스와 점심식사를 한다고 해서 그런 질문이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몇 개의 물음을 아빠에게 하고 싶다. 아빠와 딸로서 라기보다는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앉아 그의 생각을 듣고 가치를 듣고 싶다. 


 당신은 왜 시를 쓰셨어요? 시 속에는 무엇이 있나요? 꼭 소장하고픈 책은 어떤 거였나요? 왜 그게 좋았어요? 자연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삶이 지치지 않던가요? 당신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었죠? 왜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결국에는 혼자 추론하며 더듬을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그가 남긴 시들은 아마 답을 이미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딱 하나,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다. 엄마와 함께 문학도가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고. 서로를 이끌어주며 좋은 관계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혼자 그 길을 갔느냐고 묻고 싶다. 그래, 이제는 엄마도 시인이지. 그때의 한을 조금씩 풀어내며 아름답게 시를 쓰고 있지. 어린아이의 기대처럼 검사받을 아빠가 없어서 그게 좀 서운하겠네. 그래도 잘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잘할 거라고 아빠가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의 꿈속에서라도. 

 

 그렇게 아빠와의 2시간 점심식사를 상상 속에서 마친다. 당신은 누구와 점심을 함께 하고픈가? 

 지혜로운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내 삶의 좋은 질문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만남이 주는 특혜이기도 하다. 어쩌면 더 나다워지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겠다. 그렇게 누군가를 초대해 보자. 생각의 힘은 일상에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타인지 학습법] 그걸 알면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