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다고 생각한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타인에게 설명하려고 하자 무척 모호했고,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것을 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모른다고 해야 맞는 걸까? 정답은 모른다, 가 답이다." 어떤 책에서인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인지 위와 같은 말을 본 적이 있다. 적잖이 충격이었다. 아,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거구나!
그때부터 나는 모르는 게 많아졌다. 그래서 그 후로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내용을 책에서 보거나 강의로 듣게 되면 무조건 남편에게 친구에게 지인에게 이야기했다. 4살 아들 때문에 정신없는 날에도 나는 남편에게 주절거렸다. 그조차 할 수 없는 건 메모해 두기도 했다. 그런 덕분에 나에게 아는 것이 조금씩 쌓여갔다.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내 것이 아닌데도 알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거다. 나는 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살아가면서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는다. '메타인지'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가 리사 손의 책을 권하는 유튜버가 있었다. 그래서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며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밀리의 서재로 들어가 리사 손의 책 두 권을 전자책으로 다운로드했다.
메타인지는 일종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내가 안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비춰주는 내면의 거울'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그녀는 아이 둘의 엄마이자 교수다. 그녀의 책 [임포스터]를 보면 매우 솔직한 자신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가면 증후군에 대해서 언급했다. 나에 대한 메타인지가 없다면 쉽게 그런 임포스터가 될 확률이 높다고 이해했다. 작가가 쓴 두 권의 책은 매우 유익했다. 과연 내 모습 속에는 두 얼굴을 가지고 힘들어했던 적이 없었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이든 익숙하게 해내는 어른도 실수와 수정을 반복하며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은 없다."
[메타인지 학습법] p.359
책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이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리 집 아들이 내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모든 걸 다 알아?"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 사실 이 질문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모른다고 하면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과, 다 안다고 하면 많은 질문에 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댈 때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 문제였다. 그래도 우선 아이를 위해 안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대뜸 물었다. "엄마가 그럼 하나님이야?" 순간 멈칫했다. 할머니가 예전에 샛별이를 붙들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하나님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 그 그건 아닌데 엄마는 샛별이보다는 더 안다는 뜻이야."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또 물었다.
"엄마, 샛별이는 모든 거 다 알아~"
"뭘 아는데?"
"할머니가 샛별이는 박사님 이랬어!"
"그래도 다 아는 건 아닐 텐데?"
"아니야! 박사는 다 알잖아."
뭐가 뭔지 이제는 질문과 답이 모두 뒤엉킨 채 샅바 씨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메타인지 학습법]을 읽고 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도 실수하고 그러잖아. 그리고 다 아는 건 아니야. 샛별이 보다야 많은 걸 알고 있겠지만 어른들도 늘 배우고 있어! 다 안다는 건 없어.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지~ 그리고 조금씩 알아간다는 건 재밌잖아!"
아이가 헷갈린 말로 말장난을 걸어올 때조차 이제는 나의 생각을 분명히 반복해서 말할 수 있었다. 아마 독서의 즐거움인 것도 같다. 내 생각에도 리사 작가의 말은 일리가 있고, 타당하며 아이에게 조금 서툰 어른의 모습이어도 늘 배우며 산다는 걸 인식시키고 그 재미를 알게 해 주는 일은 매우 고귀했고 고귀하고 고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목차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메타인지를 방해하는 첫 번째 착각, 빠른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를 방해하는 두 번째 착각, 쉬운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를 방해하는 세 번째 착각, 실패 없는 길이 좋다고 생각한다.
토끼와 거북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 잡기
모든 변화는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이 책에서 나오는 '모니터링'과 '컨트롤'을 내 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선 나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특히 이 메타인지를 알면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 스스로가 하는 일이지 부모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좋은 소식은 인지를 키워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저자는 부모 자신부터가 이 메타인지를 아이를 통해 터득하고 스스로 모니터링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부터 해!" 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들으면 기분 상할 문제이지만, 이 말이 나부터 변화하고 나의 인지를 바로잡아 컨트롤로 나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채워야 할 문제들을 하루 일과 안에 넣을 수 있을까? 한 달 안에 가능할까? 1년 계획을 잡아야 하나? 이 여러 가지 순서들이 바로 '컨트롤'이다.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런 과정을 보고 배울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파악의 주체는 아이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 또 강조한다. 빠르고 쉬운 길은 결코 메타인지에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며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메타인지로 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길은 한 방향만 있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부모들이 그저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길 한 가지만이 아이가 갈 길이라고 굳건히 믿는다. 예를 들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일, 그래야 큰 기업에 들어갈 수 있고, 돈도 많이 번다는 생각, 결혼은 제때 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일 등 말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가 생각하는 편견을 안고 살아가기에 그걸 우리 다음 세대에게도 자꾸 권하게 된다.
부모인 우리부터가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방향과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자!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달라야 하고, 비교 없이 자기의 맥락대로 세상을 살아갈 때 훨씬 안정을 찾아갈 것이다.
"메타인지 활성을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과 선택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토끼가 아닌 거북이임을 인정하면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메타인지 학습법] p.211, 240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그 자체부터가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경주를 허락한 거북이는 왜 그 초청에 응했을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공주 이야기부터 고전 전래동화까지. 그리고 흔한 토끼와 거북이 같은 이야기도 말이다. 읽다 보면 어이가 없는 이야기가 많다. 조금씩 원작을 바꾼 내용도 수두룩하다.
거북이 이야기는 조금 더 쿨하게 생각해 보면, 매우 가볍다. 거북이는 그저 이길 마음도 없었다. 느린 게 생활이니 불편함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뭐든 빠른 것 같은 토끼가 경주를 하자니 '뭐 그러시던가'다. 높은 언덕 위의 나무까지 가보자, 는 토끼의 제의는 도달한다는 자체에 구미가 당겼을 수도 있다. 저자처럼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가 나에게도 또 새롭다. 남들 살아가는 일에 나를 비추기보다는, 내가 가진 내면의 힘을 제대로 알고 혹은 활용하고, 하고 싶은 일 가운데 나만의 맥락을 만들어 컨트롤해 보는 일은 이처럼 땡잡는 일일 수도 있겠다. 이런 전체를 가리켜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메타인지'다.
그러는 의미에서 리사 교수의 [메타인지 학습법]은 꽤 괜찮은 팁과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아이들도 공부의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이 책은 충분히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