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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앤 Jun 20. 2023

행복이 뭐 별 건가

“자기 메뉴를 만들지 않는 이상 너희는 주연이 아닌 엑스트라일 뿐이야.” 이 말에 머릿속이 혼란한 오이라는 여자가 있다. 오이는 아버지의 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는데 부자들의 요리를 담당하는 폴이라는 유명한 셰프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케냐의 좋은 원두로 볶은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200밧이라는 금액에 놀라며  “특별해서 비싼 거냐? 비싸서 특별한 거냐?”라고 되받아친다. 오이는 폴에게 자신이 특별해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부자들을 상대로 출장요리에 다니며 그녀는 특별한 셰프가 되는 꿈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과연 꿈을 가지게 되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걸까? 얼마 전에 북클럽을 통해 사무엘 바켄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게 되었다. 고도라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그는 결코 연극이 다 끝나가도록 오지 않는 존재다. 기다림은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 고도는 기다리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아니면 기다림의 존재였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고도는 우리가 꾸는 꿈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니까. 그렇다면 현재라는 과제가 남는데 나의 하루는 과연 행복한가 하는 질문이 뒤따라온다. 


오이는 아버지 식당에서 파는 징징이 국수를 만들어 동료의 칼을 맞고 입원한 폴을 찾아간다. 그냥 국수일뿐이지만 사랑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말에 폴은 사랑이 담긴 요리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이 만들어 낸 말일뿐이라고 한다. 음식보다 더 많은 걸 살 능력이 있다면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현대의 자본주의를 지적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폴은 자신이 어렸을 때 셰프가 되어 부자들의 허기가 되겠노라고 하며 그 꿈을 이룬 사람이었다. 오이는 꽤나 상업적인 회사에 들어가 식당의 멤버들을 데리고 운영을 하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 나름 유명해졌을 때 폴이 찾아와 특별함이 주는 쓴맛에 대해 경고한다. “무섭지? 나는 언제 추락하나" 하는 성공한 자들의 두려움을 이야기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걸 잃게 될 거라 자신을 떠난 오이에게 경고한다.


밀키라는 부자의 생일날, 폴과 오이는 요리 경합을 하게 된다. 마지막 느끼함을 잡아주는 뜨거운 차를 준비하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차를 마시는 사이 폴은 오이에게 다가가 마지막 가르쳐 주고 싶었던 한 가지를 이야기를 한다. 바로 사람들의 ‘믿음’인데 허기를 느끼고 있는 자에게 갖는 신뢰라고. 


하지만 폴은 불법 사냥을 해 그 자리에서 요리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며 그의 신뢰는 바로 바닥이 난다. 그러나 자신은 법 위에 있다며 발악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오이는 모든 걸 내려놓고 아버지의 식당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다시 시작해야 할 곳은 이곳이라며 자신만의 음식을 만들어 보겠다며 새롭게 다짐한다. 

오이를 보며 행복은 제자리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행복이지? 행복에 목숨을 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그러니까 순수한 기쁨이 달아나는 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TV 프로그램 [장수의 비밀]에서는 92세의 수채화 할머니가 나온다. 손으로 평생 그림을 그리며 공부하고 글씨를 쓰는데 그게 아까워 절대 쪼그라들면 안 된다며 빙그레 웃는 모습이 참 예쁜 할머니다. 늘 웃음으로 대하는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웃음이 다가 아니었다. 이른 아침 자신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도 미소 짓는 걸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삭제하고 싶은 과거가 하나도 없다며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설마 구십 인생에 지우고 싶은 부분이 왜 없겠는가. 나만 해도 ‘아, 이 부분의 인생은 좀 없애고 싶다' 하는 게 있다. 그만큼 자신이 걸어온 모든 자취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행복이란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게 아닐까. 마치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변화를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는 간디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식당을 벗어났던 오이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경험이 좋다. 결국 다시 돌아와 자아를 찾듯 자신만의 레시피를 시작하지만 거기엔 예전과는 다른 포부가 있으며 희망이 담겨있다. 누구에게든 쉬운 일상이란 없다. 어렵게 만들어낸 나의 수고가 평화로운 하루를 만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92세의 수채화 할머니처럼 쪼그라들지 않는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행복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면 마음의 기쁨 한 조각이 빛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하루를 사랑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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