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에 참가기
어느 순간인가 나는 달리고 있었다. 몸이 찌뿌둥하거나, 주말에 하릴없이 빈둥거리다가도 신발끈을 묶고 하천변을 달리곤 했다. 언제부터인지 돌이켜 보면 코로나19의 한파가 몰아치기 전인 2018년 즈음으로 돌아간다. 마라톤 10km 달리기를 참여한 친구들이 뒤풀이 자리를 만들어 술 한잔을 기울이며 대회에 참여한 얘기들을 나누던 때였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친구들이 하나 둘 달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달리기는 더욱 유행했고, 유행에 대한 편승은 아니나 나도 자주 달렸고 대회에도 차츰 빈도를 높여 참가하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상주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 녀석이 풀 코스에 참가한다고 채팅창에 글을 올렸고, 함께 참여할 친구들을 모으고 있었다. 또 다른 녀석이 우리도 하프 코스에 참여하자고 꼬드겨 친구와 나는 바로 그날 하프를 신청했지만, 결국 꼬드긴 놈은 대회참여비를 납부하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을이 찾아오고 우여곡절 끝에 제22회 상주 곶감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프를 신청한 친구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만나 2시간 안에 골인하는 것으로 다짐을 하고 하프는 더 이상 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준비하는 과정이 우리 같은 술고래들에겐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PB를 위해 하프 코스를 달리다.
나도 나름 단백질 섭취와 운동, 대회 3일 전부터는 탄수화물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준비를 많이 했다. 평소보다 물도 많이 마시고, 돌아다니는 몸에 좋다는 것들은 보는 족족 챙겨 먹었다. 그렇게 나름 준비한 몸을 이끌고 출발코스에 서니 긴장된 맘에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출발시작 신호가 울리고 운동장을 꽉 채운 풀 코스와 하프 코스 선수들이 동시에 출발했다. 처음 2km는 친구와 함께 달렸다. 나는 대회의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액션캠을 조기 주머니에 넣고 영상을 찍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11월 중순이었지만, 다행히 기온은 낮지 않았고 태양은 구름에 가려 달리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한 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8km 표지판이 나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달리는데 음악이 이상했다. 계속 같은 음악만 반복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달리기 전 세팅을 할 때 무한 반복을 눌러야 되는데 한 번 더 눌려서 한 곡 반복이 눌린 거 같았다. 달리기를 멈추고 음악을 바꿀 수는 없어 계속 달려 하프코스 반환점에 도착했다. 아... 이제 반만 더 달리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찰나에 친구 녀석이 에너지 겔을 짜 먹고 있었다. 친구를 앞질러 앞만 보고 달렸다. 이번엔 친구 녀석을 앞질러 골인해야겠다는 다짐이 하프코스의 남은 반을 달리게 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친구 녀석은 어젯밤에 설사에 시달린 놈 아니던가? 이 녀석만은 꼭 이겨야 한다는 맘으로 다리를 멈추지 않고, 오르막이 나와도 몸을 숙이고 걷지 않고 뛰면서 오르막을 올랐다. 후반부로 가니 속도가 줄어드는 듯하였지만,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다리를 옮기고 몸이 앞으로 나가는 행위를 반복할 뿐이었다. 숨이 차기보다는 어느 순간 다리와 허리와 발목과 허벅지가 아픈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넘어서서 드디어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앞질러 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내가 앞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간식을 챙겨 허기진 위를 달래고 쉬고 있으니 친구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나보다 3분 뒤에 도착했고 짐을 맡기는 곳에서 만났다. 둘 모두 PB를 갱신하고 2시간 안에 들어 만족한 경기였다. 이제 기록을 위한 하프는 없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기록은 보여주는 전광판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람들의 줄이 한없이 길었고, 우리 차례가 다가오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인생 최고의 기록을 남기는데 필요한 시간으로는 길지 않았다. 개인별로 사진을 찍고 아직도 허기를 채우지 못한 위를 달래기 위해 대회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떡국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각자 개인정비를 하고 저녁에 뒤풀이를 위해 동성로에서 만나기로 했다.
풀 코스보다 더 긴 뒤풀이 시간들
집에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다. 근육과 인대의 통증에 좋다는 마그네슘 스프레이를 하체 전체에 바르고 약속장소가 있는 도심으로 향했다. 왜관에서 오는 친구가 있어 그의 편의를 위해 대구역에 가까운 곳에 장소를 잡았다. 도착하니 대회 참여자 3명과 신청을 했다 개인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한 친구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대회를 뒤돌아 보며 다양한 얘기를 나누는 중간 하프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려는 우리를 보고 풀 코스를 완주한 친구가 설득을 시작했다. 너희들 정도의 능력이면 풀코스 완주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10km를 뛰다가 하프를 뛰는 건 11km만 더 뛰면 되지만, 하프에서 풀코스를 뛰는 건 21.0975km를 더 뛰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하프 참가하자고 꼬시고 본인만 빠진 친구 녀석이 왔다. 일단 욕부터 한 잔 먹여놓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1차는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풀 코스 친구가 계산을 했다. 친구와 더불어 트럼프와 일론머스크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2, 3차로 이어지면서 개인 PB를 달성한 내가 2차를, 하프 코스 참가 뻥을 때린 친구가 3차를 계산하고 마라톤 뒤풀이는 끝이 났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핵심적인 것은 내년 2월에 있을 대구마라톤의 하프 코스는 기록이 아니라 편하게 참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PS 오늘의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다. 길이길이 간직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