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240111에 마주친 종이컵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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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불쾌한 일은 기억하지 말라고들 한다.
"뭐 하러 들추고 그래. 다 잊으라니까."
그 말을 하는 얼굴 너머에는 변명조차도 노력할 줄 모르는 뻔뻔함.
대중을 위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네 잘못이 아니니 다 괜찮다는 소리. 간밤에 술 취한 자들처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반성도 없는 둔감한 자들이나 넙죽넙죽 받아먹는 그 말. 민감한 사람이라면 오직 마음이 기준이기에 타인이 아무리 괘념치 말라 권하여도 사람의 일에 마냥 괜찮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ㅡ라는 소리.
이미 방향을 잃었다.
소수일지언정 어떤 사람들은 진지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삶의 역사를 건설 중이다.
역사를 잊는 자에게 진보는 없다.
그러함으로 과거는 거론하지 말라는 말, 다 괜찮다는 말, 내 귀에 수없이 들이붓는 그런 무책임한 내빼기. 굳이 내 식으로 응용하자면,
네 삶이 역사도 뭐도 아니니 다 잊어주마.ㅡ 이런 호쾌한 용서 정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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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엉덩이뼈와 다리근육과 무릎관절이 상하는 것도 잊은 채 동지와 소한을 보냈다.
그 사이 아버지 기일이 지났다.
당신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두고두고 칭찬하던 세 여인, 여인들은 제각각 소소하고도 끈질긴 탐욕으로 그를 쓰러트렸다. 덕분에 자진 함몰한 "대략 선량하였으나 강인하지 못했던 나의 부친".
시대와 숙명의 그늘 탓도 있겠으나
그는 늘
무엇을 지지하고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에서
모순을 넘어서지 못했고
게 중 행운이 따를 법도 하지만
눈먼 세 여인으로 하여
탈출구조차 없었다.
나름의 사랑이라고 평생 신념이라고
그가 지켜주었던 여인들 중 하나라도
넘치게 받았던 신뢰에 합당한 감사라도 해주면 위로 삼으실까.
그러나 턱도 없다.
돌아가신 부친의
가엾은 세 여인
매일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노라 눈물짓기 바쁜 걸...
다시 태어나셨다면
강하고 현명하게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