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좀머 씨 이야기]
아픔을 한 몸에 모은 자
[좀머 씨 이야기] '마지막 장'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것이 알려지기까지에는 2 주일이 걸렸다. 우선 제일 먼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락방의 월세를 받으려던 리들 어부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좀머 아저씨가 2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 아주머니는 슈탕엘마이어 아줌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슈탕엘마이어 아줌마는 히르트 아줌마에게 상의를 했고, 히르트 아줌마는 손님들에게 아저씨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도 좀머 아저씨를 봤다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2주일이 더 지난 다음 리들 아줌마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기로 했고, 그 후 몇 주일이 지난 다음 신문에 아저씨를 찾는 작은 광고가 아무도 그 사람이 좀머 아저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아저씨의 여권용 사진과 함께 나왔다. 사진에 좀머 아저씨는 검은색 머리에 숱이 많았고, 집요한 눈빛과 입술에는 확신에 차고 거의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처음으로 좀머 아저씨의 온전한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 잠깐 동안 좀머 아저씨와 아저씨의 비밀스러운 행각에 대한 말들이 동네에서 주요 화젯거리가 되었다.
"완전히 돌아 버렸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했다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았던 것이 분명해. 아마 그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무엇이고. 자기가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거야." "다른 나라로 이민 갔나 봐."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밀폐 공포증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유럽이 너무 작계 느껴져서 캐나다나 호주로 갔을 거야."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계곡에 떨어져 죽었을는지도 몰라." 어떤 사람들은 또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이 호수까지 미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신문이 누렇게 변색되기 전에 좀머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는 수그러졌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그를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리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몇 가지 물건들을 지하실의 한구석으로 몰아 놓고, 그 방을 여름 행락객들에게 빌려 주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그런 사람들을 <여름 행락객>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름>이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다른 생각이 들게 하기ㅡ좀머 Sommer 씨는 독 일어로 <여름>이라는 뜻ㅡ 때문이라고 하면서 <도시 사람들> 혹은 <여행객>이라고 불렀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주 늦게 집에 도착하여 텔레비전의 나쁜 효과에 대한 일장 훈계를 들어야만 했을 때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역시 하지 않았다. 누나에게도 하지 않았고, 형에게도 하지 않았으며,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코르넬리우스 미켈에게조차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117~ 1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