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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Sep 16. 2024

나팔꽃, 4 년

떠날 거야

#


소네노 요시타다:  "아침이슬과 함께 보려 했더니 어느 틈에 시들어버린 나의 나팔꽃이여"


#.


이사 갈 집을 구해놨다.

겨울에나 입주할 수 있는데 웬일로 주인이 일찍 내놨고  여름 끝무렵에 당장 이사할 집을 구하던 내가  마침 그 집을 보았다.

좋아요!

별달리 살핀 것도 없이 나는 좋다고, 겨울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

곧 떠날 거야.

그런 맘으로 지금 살고 있는 나의 보금자리를 둘러본다. 거의 날마다.


수집벽이 은근한 터에 집은 본래가 옹색하고 그 결과 단정한 기분이 손상된 실내.


버려야 해.

조금 덜어내선 티도 안 날 것 같은 잡다한 살림들. 벌써부터 선택장애가 밀려온다.

당장 탁자위의  보라색 포장지,  선물 받은 꽃다발에서 벗겨낸 것.

라색은 언제 봐도 좋아...우선 놔둘까... 이사 갈 때까지 쓸 일이 있을지 누가 알아.


버릴까? 말까?

집안의 사물들마다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가, 이내 동의하는 나이지만 겨울 어느 날 적당한 중량과 부피로 가뿐한 이동이고 싶은 맘이 가슴 가득. 

지금은 이를테면 사물과 금세 정들고 마는 내 경향성에 역행해야 하는 간절기이다.


과감히 버려야 한다, 급작히 세워진  전제 위에 몸에 밴 수집벽은  엄한 저울질을 당하고ㅡ 이는 분명 상당한 스트레스이리라. 


#.


적정 온도란 게 있다.

가을 명절 추석 이미지 속엔.

'처서'가 지나도 버젓이 열대야가 나타나는 2024년의 기상이변, 온도상승이 추세인가 체념하던 터에 간밤에 비가 듬뿍 내리고  기온이 내려갔음만은 감지했지만.

사실은 나팔꽃 화분이 말라가던 터에  단비를 듬뿍 머금고 아침빛에 꽃을 피웠던 것이다.


4년 전 이곳에 터를 잡고 꽃씨를 얻어와 내 손으로 심었던 것이 해마다 다시 피고 피어 오늘도 피어난 것이다.


이제 곧 너를 두고 떠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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