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융 <반야심경 마음공부>
가장 현대적인 공의 지혜
"업보라는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인생 :
업력은 업의 힘을 뜻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행온'의 힘이다. 업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동력이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행온을 영어로 '충동(impulse)'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행온을 쇼펜하우어가 말한 욕망과 나란히 놓기도 한다. 모두 행온에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무언가를 하려는 그 사람을 '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미인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미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나면 그 미인을 소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런 강렬한 충동이 생겨나고 그것을 행위로 옮기는 사람이 설마 '나'가 아니란 말인가?
부처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정말로 나'가 아니다. 그 미인을 사랑하면 안 된다고 냉철한 이성으로 저지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녀를 사랑해 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어떻게 '나'일 수가 있을까? 차가운 이성으로 경고했건만 그녀에 대한 사랑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왜 그러는 걸까? 바로 업력 때문이다. 그 욕망 속에 숨어 있는 업력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행'하는 것은 사실 실재하는 '나'가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억겁을 거쳐 쌓인 업력이 모여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87)
ㅡ 페이융/ 허유영 역 < 반야심경 마음공부> 유노북스. 2021.
#. 현재를 기준으로 볼 때 업(카르마)은 과거가 아닌 미래적 가능성이 된다.
반야심경의 핵심이라 할 경문은 '색즉시공 공즉시색'.
몸과 마음 그리고 말 이것들은 업을 결정짓는 행온이라 하는데 이 행온은 오온의 하나이고. 오온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색'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생명 저변의 불가시적 원리가 아닌 잘 보이고 잘 느껴지는 세계와 생명의 현상을 한 마디로 일컫는 철학용어가 '색'이라 할 것이다.
이 정도의 이해 위에 가장 궁금한 업의 믄제를 말하자면ㅡ
불교에서 업을 말함은 과거적인 고정적인 죄의식, 속죄에 치우친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개선하라는 긍정적 의미가 더 강하다.
그래도, 업력을 즉 업의 회오리라 할까, 경향성을 복운과 지혜로 바꾸는 작업이 간단치 않다는 자각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