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세월>
"무상"을 잊고서 어찌 작가일 수 있으랴
아니 에르노 <세월>: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워질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쌓인 사전은 삭제될 것이다. 침묵이 흐를 것이고 어떤 단어로도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입을 열어도 '나는'도 '나'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언어는 계속해서 세상에 단어를 내놓을 것이다. 축제의 테이블을 둘러싼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저 단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며, 먼 세대의 이름 없는 다수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점점 얼굴을 잃게 될 것이다. 19쪽.
ㅡ 아니 에르노 작가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프랑스문화원에 들렀고 혼자서 외로운 젊음이었고 저자의 강연이라고 하여 호기심에 들어가 앉았다. 그녀의 책을 읽은 적도 없이.
무심하도록 드러내기. ㅡ 그녀에게서 알게 된 작법이다. 사실 이 만큼도 어렵다. 자기 자신도 무수한 인간 중 하나라는 걸 뼛속 깊이 명심한 냉철한 관점이 이 작가에게는 아주 단단하게 박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