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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Dec 03. 2023

상사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마지막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아버지는 '상사화가 폈냐'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이 생의 끝에서 겨우 상사화꽃을 기다리다니. 아직도 난 아버지의 기다림이 진짜 상사화였을까 생각에 잠기곤 한다. 왜 하필 상사화였는지, 른 꽃이었다면 나도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두고두고 생각나진 않았을 텐데.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 무성한 잎이 다 말라 죽어버리면 꽃대가 올라오고 그 끝에 비로소 꽃이 핀다.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 것도 서로 어긋나는 꽃과 잎의 아픈 인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이란 것 자체가 모두 어긋나는 인연들의 인생 사연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투병 생활에 간병을 자처한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또하나의 직장처럼 매일 아버지 집을 들락거렸다. 우리 집보다 더 자주 아버지 집에서 자고 다녔지만 중간 중간 비는 시간은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꽃 가꾸기다. 아버지는 병원 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아무것도 할 게 없었으니까. 주차장 옆으로 마당 같지만 마당 아닌 마당은 신경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그저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하게 버려져 있던 곳을 깨끗하게 치우고 흙을 다독여가며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람이고 자연이고 참 희한하다. 관심을 받으면 달라진다. 땅을 고르고  거름을 주고 꽃을 심으니 제범 정원답다. 물도 주고 시드는 잎들을 따주며 사람과 대화하듯 매일 대화도 한다. 

시간이 아주 잘 갔다. 일을 했다는 기쁨도 느낄 수 있어 일말의 자존감도 세워주었다. 그동안 살갑게 지낸 사이도 아니였던 부녀 사이의 어색함을 희석시킬 완전 딱 좋은 취미에다 무엇보다 적당히 고단한 몸을 만들어 주었다. 여러모로 손바닥만한 정원 가꾸기는 훌륭한 당신의 일과가 되어 한시름 놓 일석이조였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씩 건넸고 잠시 잠깐 머물러 꽃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기라도 하는 날엔 늙고 병들어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던 아버지 마음의 주름이 살살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할 말이 내내 끊이지 않았고 나는 그저 응응 대답만 했다. 시들어 가는 꽃을 살려내는 마법 같은 손길은 소문이 나 자신들이 키우던 꽃을 가지도 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름 동네에서는 유명한 꽃밭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때 알았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노동은 사람을 참 쓸모 있게 만든다.아버지의 이 순수한 노동으로 화단은 당신의 큰 자랑거리가 되었고 예쁘게 키워진 꽃들도 이 집 저 집으로 시집을 갔다. 그럴 때 아버지의 어깨는 으쓱 한뼘은 올라갔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마음이 흐뭇했다. 이 순수한 노동 덕분에 10년 가까이 아버지의 오랜 투병 생활은 견딜 만 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중에도 화단은 늘 관심사였다. 봄, 여름, 가을에는 계절 별 꽃들이 만발했고 겨울에는 겨울대로 멋지게 꾸며놓은 풍경에 하얀 눈이 쌓이면 고풍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작은 화단 가꾸기는 긴 시간 이어졌고 그때 그날도 여러 번 입퇴원 중에 하루인 줄로만 알았다. 집에 금방 다녀온 내게 상사화 꽃이 폈냐 물으셨고 아직 안 폈다는 대답에는 필 때가 됐는데 이상하다고 하셨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날 오후 급히 영정 사진을 찾으러 간 집 마당엔 기막히게도 상사화 꽃이 활짝 펴 있었다. 그 꽃은  마치 나를 향해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것만 같았다. 눈물이 한참 쏟아졌다. 

매번 꽃을 기다리던 당신과 어긋나 핀 상사화가 새록새록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매일 꽃이 폈냐 묻던 상사화 소식을 끝내 듣지 못한 그날을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돌보던 상사화는 거짓말 같이 뿌리가 썩어 영영 죽어버렸다. 이제서야 꽃을 가꾸던 아버지 마음을 짐작해 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꽃 이야기가 들린다. 속절없이 피고 지는 꽃이 꼭 우리네 인생 같다. 어쩌면 당신은 어긋난 삶의 어느 시간 즈음에 매일 가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별을 하고서야 그리워지는 마음, 아프고서야 행복을 이해하는 마음,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어긋난 마음들은 삶의 끝에서  활짝 피는 꽃같이 서로 닮았다. 만나지 못하는 꽃과 잎의 그리움은 이루어질 수 없어 슬픈 것이 아니라 어긋나 깨닫게 된 사랑이  아픈 걸 거다. 겨우 상사화가 폈냐던 마지막 말이 이번엔 어떻게 다가올까. 가는 이들의 잎은 지고 거름이 되었으니 꽃을 활짝 피우고 예쁘게 살라고. 그래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계속 이어가라고 말이다. 


아버지가 기다리던 상사화는 희한하게도 돌아가신 날 활짝 폈고 그해를 마지막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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