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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경 Jun 07. 2024

목적지

지렁이의 안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를 가기 위해 탑승을 한다. 모든 버스는 목적지가 있다. 그날 나는 목적지가 분명했다. 하지만 낯선 길가 풍경을 보고서야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알았다. 더운 날씨에 지쳐 타자마자 시원한 버스 냉방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갔을까. 졸다가 깨다가 유리창 너머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정수리가 뜨거워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지랑이가 가물거렸고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초행길이라 길도 잘 모르는데 택시 탈 걸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천천히 미끄러지듯 정류장에 다가가 선 버스. 여기서 내려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도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 어딘지도 모르는데 내리기가 싫어 뭉그적대는 동안 한 칸 한 칸 지팡이에 다리의 무게를 싣고 끌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할아버지 역시 그 속도에 맞춰 멈추고 바라보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두 분 다 올라설 수 있었다. 할머니의 몸은 힘들게 나머지 무게를 다리 위로 옮기기 위해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내 다시 몸뚱어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앞 좌석 의자 뒷부분에 발바닥을 대고 몸을 밀어 올려 바르게 앉았다. 어차피 잘못 탄 거 여기서 내려도 어딘지 모르는데 아는 곳이 나오면 내리자 싶었다. 버스에는 내 앞 좌석에 어떤 할머니 한 분밖에 없었는데 그 옆 좌석을 할머니는 겨냥한 듯 싶었다. 자리까지 오는 걸음에는 빨리 걷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내 귀를 막고 있던 이어폰에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수의 목소리가 눈물 나게 절절하다.

<이제 네가 있는 곳에 다 온 것 같아...>

할머니의 눈과 마주쳤지만 쓸모없고 바보같이 멍청한 수다를 막는 데는 이어폰만한 게 없다. 시선을 피하고 볼륨을 최대한 높인다. 붙어 앉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옆 칸에 한 분의 할머니. 그 뒤로 내가 앉아 풍경을 바라보며 음악과 함께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 있다.

“얼마?”

“아니! ....”

간간이 들려오던 대화는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는 고막을 꽉 막아놓은 이어폰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 두 분의 대화는 이미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는 이어폰을 아예 빼버렸다.

“10년!”

“2년?”

“아니, 10년!”

“아~2년!”

반복되고 있는 두 분의 소리는 사실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사별한 지 10년 됐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그저 두 분은 한참을 버럭버럭 큰 소리만 질러댔다. 오가던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2년인지 10년인지 모르게 끝나 버렸고 정류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탈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천천히 움직여 내렸다. 왠지 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였던 나는 그 정류장에서 두 분을 따라 내렸다. 그리고는 곧 큰 목소리로 할머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가려는 목적지를 묻고 답을 듣기까지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이상하게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행복하면서도 서글펐다.

“저~이 사별한지 2년 됐댜 ~”

귀가 안 들려 10년 세월을 2년으로 줄여 말하는 할머니의 세월은 어땠을까. 두 분이 살가워서가 아니라 함께 세월을 이겨냈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해 보였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고 뭐가 행복이란 말인가. 마을로 통하는 길이 나오자 두 분은 큰 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하시고는 천천히 걸어가셨다. 그대로 정류장이 나올 때까지 걸으며 생각했다. 행복은 함께 견디는 세월이 아닐까. 그리고 그 세월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하고.

태양이 뜨거웠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거뭇한 것들이 자꾸 보였다.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어 잠깐 머뭇거렸지만 이내 빠짝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시체들이란 걸 눈치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지렁이들. 아마도 밤새 내린 비에 쓸려 쏟아져 나왔나 보다. 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밟지 않으려 집중했다. 꿈틀.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움직임이 보인 것 같다. 분명히 움직였다. 금방 다시 꿈틀. 기를 써도 제 자리다. 마지막 생명을 있는 힘껏 쓰고 있는 몸부림에 나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주변을 살펴 가장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가지 하나를 집었다. 살며시 조심스럽게 지렁이를 들어 올려 시원하고 습한 곳을 찾아 천천히 내려주었다. 그곳은 지렁이 혼자 갈 수 없는 먼 길이다. 지렁이의 마지막 생명이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처럼 느껴진 건 아마도 버럭 버럭 소리를 질러대던 할머니와 아무 말 없이 바라봐 주던 할아버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렁이처럼 가늘어 보이는 갸날픈 생명줄이다. 나는 지렁이와 그분들의 편안한 안식을 위해 잠시 기도한다.

할머니와 헤어지고 다시 꽂은 이어폰에서는 노래가 끝나가고 있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맴돌아...

항상 그 자리로 돌아와...

다 그렇지 뭐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어젯밤의 꿈처럼>

인생의 목적지는 분명한 것 같다. 설령 버스를 잘못 탈 지언정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변함이 없듯 인생도 그래 보인다. 행복한 삶의 목적지는 열심히 제 몫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며 그 사랑은 우리 모두가 똑같지만 다르게 견디는 세월일 것이다. 변함없이 사랑하는 우리는 인생의 목적지인 행복한 삶에 거의 다다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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