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만 했더라면
움직일 때마다 그는 부딪히고, 걷어차고, 넘어졌다. 우당탕탕, 팍, 퍽, 윽!
"왜 그래..."
묻는 말이 아니다. 정말 궁금해서 하는 말이다. 왜 저러는 걸까.
그를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 친구 손에 이끌려 간 통기타 라이브 레스토랑에서는 입구부터 굵은 저음 가수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저 노래를 굵은 저음으로 불러도 괜찮구나. 낮은 조도의 조명과 부드러운 무대 불빛, 예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노래 사이사이 가수의 저음 멘트까지 여자들의 감성을 저격한 레스토랑이었다. 여대 앞 다웠다.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라는 마지막 곡이 흐를 때쯤에는 이미 친구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농담을 적당히 섞어가며 마무리 멘트까지 듣자마자 친구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를 부를 기세였다. 순간 그가 무대에서 기타를 들고 내려오다 어딘가에 부딪혔고 그런 그를 보고 카페 내 사람들이 빵 터진 것과 친구가 손을 든 건 동시였다. 우스꽝스러운 몸 개그로 부딪힌 다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했고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친구는 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커피를 사겠다며 그를 불렀다. 둘의 티키타카는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대와 영원히 살고 있는 사람은 내 친구가 아니라 나다. 그때는 나도 그의 행동이 재밌었다
그와 나는 오래 연애를 했다. 내가 재수할 때 만났으니 청춘을 고스란히 그와 보낸 셈이다. 당시 그는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음악 카페에서 통기타 가수로 돈을 벌고 있었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입담이 세고, 열정적이며 유머러스했다. 자신만만했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연애 초기에는 컴퓨터를 독학한다며 방에 처박혀 한 달을 넘게 나오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나를 놀래키기도 했다. 천재 소리를 들었다는 어머님 말씀에 신빙성이 더해진 최초 사건이었다. 잠도 딱 6시간만 자고, 우울하다거나 고민에 빠진 모습도 본 적이 없다. 사람들과도 쉽게 어울렸다. 술은 입에도 못 대면서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모든 사람들을 귀가시켰고 지겨운 넋두리에도 최선을 다해 상담사처럼 대화를 해주었다. 그는 마치 작가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가 그때는 멋있어 보였다.
"아쫌! 그러다 다친다! 천천히 좀 다녀. 왜 그래! 이제 그러다 뼈 부러져!"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서 문턱에 걸려 춤을 춘다. 양말을 벗으며 소파 모서리에 부딪히며 곡예를 하고, 밥을 먹으러 식탁에 앉으면서 식탁 다리를 걷어찬다. 그는 여전히 첫날처럼 몸 개그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연애 기간 보였던 모습도 똑같다. 다만 달라진 건 연애가 아니라 결혼 생활이라는 사실이다.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연애 때 최고였던 모습들이 결혼해 일상이 되자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다치고 넘어지고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신기한 건 병원 가는 일이 여태 없었다. 혼자 응급 처리를 하는 것도 놀랍지만 더 문제가 커지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처음엔 불안해 병원 가자 졸랐지만 언젠가부터는 죽겠으면 가겠지 했다. 그런데 이번이 그 죽겠는 타이밍이었나 보다.
" 여보! 나 응급실 가야 돼!"
그는 지금 오른쪽 손과 오른쪽 발을 수술하고 석고붕대로 칭칭 감고 입원해 있다.
발은 슬리퍼에 걸려 넘어지면서 바스러졌고, 손은 그 발을 수술하고 입원해 있다가 퇴원한 다음날 새벽 개싸움을 말리다가 물려서 인대 수술을 했다. 그 병실 그 침대에 최단 시간 다시 누운 환자가 되었다. 병실 환자들과 브로맨스도 아니고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다고 웃고 떠드는 그를 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슬쩍 옷 끄트머리를 당겨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요란하게 같은 병실의 환자들과 복도에 앉아 일하는 간호사들한테까지 인사를 하고 휴게실로 나와 앉는 그를 향해 나는 입을 뗐다.
" 어쩜 그렇게 한결같을까! 분명 조증이 맞다니까!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남편은 깔깔 웃었다. 또바기 남편이 버거운 건 순전히 결혼 때문이다. 아마 연애만 하고 끝났다면 나는 그를 가장 멋있는 남자로 기억할 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 노란 풍선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아지곤 했다. 둥실둥실 떠가는 노란 풍선이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상상이 되곤 했다. 그 풍선은 분명 어딘가에서 뻥 터졌을 텐데도 나는 하늘을 나는 풍선만 생각했다. 남편도 하늘을 나는 노랑 풍선 같다. 바람을 좀 빼고 싶다 저 풍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