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딱로드 Dec 15. 2021

은행나무 열매

 은행열매가 우수수 떨어져 모여있다. 보기만 해도 냄새가 올라온다. 

  은행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다. 그날따라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준비하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저 멀리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막 떠나려고 했다.. 저것 마져 놓치면 진짜 지각이다. 냅다 달려서 겨우 버스를 잡아 탔다. 숨을 몰아쉬며 안심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코를 감싸쥐고 내 쪽을 흘깃거렸다. “아휴 똥냄세.....”라며 원망섞인 눈으로 날 보셨다. ‘저아줌마 왜저래?’하면서도 날 보는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맞아떨어졌다. 내 신발에 두어개의 은행이 철퍼덕 보란 듯이 붙어있었다. 난 애써 발을 바닥에 문질러 떼어내려했지만, 문지르면 문지를수록 냄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그 아줌마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결국 내릴때까지 붉은 얼굴로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이후로 은행은 절대 안밟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며철 전에도 바닥을 보며 주의해 가야 할 구간을 마주했다. 마트를 갈 때 이 길이 제일 빠른데 은행은 밀집도가 높다. 정신을 딴 대 다가 두면 밟기 쉽상이다. 이 은행을 떨어뜨린 은행나무를 보니 역시 30년은 돼 보인다. 길 위에 이렇게나 은행이 많다니. 고개 들어 보니 이 은행나무엔 바닥에 떨어진 것의 10배는 넘어 보이는 은행열매들이 아직도 매달려있다. ‘가을동안 이 나무는 얘들 안떨어뜨리고 뭐했나. 왜 보행로에 이런 걸 심어놓은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주의를 집중해서 까치발을 해서 겨우 하나도 안 밟고 통과하는데 성공했다. 왠지 모를 성취감을 느꼈다. 

  오늘 마트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윙 소리가 멀리서 부터 들렸다. 자세히 보니 그 은행나무의 가지가 잘리고 있었다. 인부들은 크레인 차에서 가차 없이 우거진 은행의 가지를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은행나무는 가지와 함께 마지막 남아있던 은행들을 바닥에 소나기처럼 떨구어냈다. 우박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많던 은행들이 한꺼번에 떨구어졌다. 난 은행 하나라도 머리에 떨어질까 얼른 옆의 보도를 따라 마트에 갔다. 

  마트에서 돌아올 때는 그 길은 더 이상 옛날 길이 아니었다. 팔이 잘려나간 몸뚱아리만 남은 나무들이 억울한 느낌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길 한쪽 가장자리엔 마지막 떨어져 나간 은행들이 모여있었다. 팔잘린 나무와 억지로 떨궈진 은행들을 나도 모르게 번갈아보았다. 갑자기 이상하게도 코끝이 찡해왔다. 그렇게 내 앞길을 막았던 은행 열매였지만, 정작 앞으로 나뭇가지가 자라기 전 까지는 못 볼 생각에 뭔가 씁쓸했다. 은행나무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일거다. 자기 딴엔 열심히 힘내서 자라 열매를 맺을 뿐이었는데. 내 미래 아들 딸인 열매를 사람 맘대로 가져가거나 밟아 대더니, 이제 아예 내 팔들을 다 잘라서 이파리 없는 나무를 만들다니...... 얼마나 사람이 미울까도 생각한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파괴 그 자체다.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게 정말 이로운 걸까?

  멍하게 은행나무를 보다 마트에서 장 본 물건을 든 팔이 무거워져 다시 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두 발은 아직도 남은 은행을 밟을까봐 까치발을 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