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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Oct 14. 2022

온 우주를 빛내고도 그걸 모르는 삶

꼬마 정자 보고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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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이름은 정자다. 엄마는 이 이름을 어찌나 싫어했는지 한때는 진지하게 개명을 생각했다.


"왜 나만 촌스럽게 정자냐? 이모들 이름은 정혜, 정애, 이렇게 다 예쁘게 지어놓고..."


엄마가 무남 6녀의 막내딸로 태어나자, 외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아들을 이제는 포기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아들 자를 붙였다. 타고난 소녀였던 엄마는 자기 이름이 꼴보기 싫었고 태어난 것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받아들였다. 삶이 갑갑해질 때마다 정자로 처음 불리게 된 그 날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일쑤였다.


이름 때문이었는지 어쩐지, 엄마는 40대 중반이 되자 삶에 대한 자신감을 지하까지 내려놓고 있었다. 20년 전 어느 날 운전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사레가 들려 격한 기침을 하다가 침을 뱉고 싶었다. 둘러보니 차 안에는 휴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창문을 열어 태! 뱉어버리는 것은 예의바르게 살아온 엄마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정지신호에서 살짝 운전석 문을 열고 마른 침을 조용히 뱉던 엄마는 그만 차에 약간의 침을 묻히고야 말았다.


"왜 나는 침도 못뱉어?"


엄마가 힘없이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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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인생을 사는 동안 꼭 불려야 할 만큼의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살아가는 내내 이름을 피했더라도 말년에 병원에 있다면 이름 폭탄을 맞을 각오를 해야한다.


송정자님, 송정자님, 송정자님,... 병원에서는 백 번도 넘게 엄마의 이름이 불렸다. 회진 도는 의사에게서도, 바이탈을 체크하러 오는 간호사에게서도, 세 끼 병원 밥을 먹을 때도, 검사를 하러 와서도 어김없이 이름이 불린다. 그래 우리 엄마 이름이 송정자이지. 앳된 간호사들이 하이톤으로 엄마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을 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송정자."


엄마는 다른 질문은 몰라도 그 질문에 만큼은 성실하게 대답한다. 일단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엄마의 의식 체크는 Pass 된 것이다. 이름은 환자의 전부이다.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라 환자가 이름을 불렀을 때 대답을 하면 Awake 상태로 인정 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의료진이 엄마의 뇌손상 상태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주기를 바랐지만 암병동에서 인지상태는 필수 진료사항이 아니다. 환자 쪽에서 알아서 열심히 자발적으로 상태를 체크하고 적극적으로 정신과나 재활과의 협진 요청을 해야한다. 의사보다 더 똑똑하고 민감하고 종합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은 첫번 째로 환자, 그 다음이 환자의 간병인이다.


"어머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팔십.. (기억을 더듬으며) 팔십..."

"아니신데? 어머니 나이 팔십 아니신데?"


인지 검사를 하며 엄마가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한다. 아직 칠십도 안됐는데 무슨 팔십이래? 답을 알려주고 싶지만 우선은 지켜본다. 엄마의 뇌가 많이 다친건가? 곰곰 생각해보니 엄마는 한참이나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엄마의 마지막 나이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의사가 환자분이 아닌 어머니 나이를 물었으니까 말이다. 엄마는 나름 잘 해낸 거지만 인지 점수는 이미 깎였다. 엄마는 빵점이다.


송정자님을 외치지않고 어머니라고 부르던 젊은 의사는 착하고 친절하고 따뜻했다. 그녀는 피곤에 쩔어있는 내게, 다음 검사까지 20분이 남았지만 암병동까지 돌아갔다 다시 오기에는 너무 머니까ㅡ아마도 편도 15분 정도의 이동일 것이다ㅡ아래 층에서 대기하시라고 했다. 그렇지만 분명 암병동 간호사는 시간이 아무리 바특해도 다시 돌아왔다 가야한다고 내게 신신당부 했었는데.


나는 조금 더 따뜻한 의료진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막상 시간이 다 되어 검사실로 들어가려니 엄마의 침대가 너무 커서 들어갈 수가 없다. 검사실에서는 침대를 옮겨주는 일을 하지 않으니 결국 그 먼 암병동까지 돌아왔다가 도로 같은 검사실로 터덜터덜 향했다. 사람의 친절과 상식, 인생 히스토리와 같은 고상한 것들이 껴드는 순간 시스템이 멈춰버리는 세상에 극도의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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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얘기로 돌아와야겠다. 내 이름은 지연이다. 나는 엄마보다야 내 이름에 대해서 좀 낫게 생각하지만 어쩐지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이 이름도 썩 마땅치는 않다고 생각해왔다. 도덕 교과서에는 늘 지연이가 등장하여 말하는 장면이 있었고, 지연이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일어서 읽어야만 했다. 그것도 꼭 어떤ㅡ잘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 영수 정도 되는 이름의ㅡ남자애랑 대화체로 읽어야했으니 민망하고 귀찮아 죽을 맛이었다.


엄마가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또한 내 이름을 대하며 아주 어릴 때부터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대해 오래도록 곱씹었다. 이름은 개체를 지칭하는 것 이상이고,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추상적 개념이다. 한 개인의 인생 주제가 손쉽게 되어버리는 만큼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신경써서 지어야 하는 건 확실하다.


다행히 나는 일찍 디지털 시대를 맞았다. 하필 내 중 2 병이 극에 달했을 때 PC통신이 유행했고 나는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심 끝에 내 두번 째 이름은 사악이 되었다. 이후 이런 기괴한 닉네임을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일주일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제가 죽고나면 세상의 사악한게 다 없어질 것 아니에요."


이불킥 개소리를 쿨하게 뽐내며 나는 이 시절을 기회삼아 특별함 코스프레를 하며 지냈다. 우리 시대의 아이들은 자기의 찌질함을 은밀하게 숨길 생각이 없다. 찌질한 아이들끼리 모여도 개중에 누가 제일 멋있는지 견주어 볼 수 있다. 엄마는 숨기고 싶은게 많았지만 옐레나 프랑소와즈 마드무아젤 같은 우아한 닉네임을 지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jeongja0206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엄마에게 메일을 개설해 주며 즉석에서 천재-천재라는 의미의 clever-smart라는 아이디를 만들어 주었고 엄마는 또 그걸 덥썩 받아버리고 말았다.


50대 정자, 아니 58년 개띠 천재-천재님은 그 이름으로 온라인 카페 활동을 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닉네임 그대로 현명한 언니로 통하며 스마트 선생님, 스샘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65세가 된 스샘의 장례식에는 무려 십수명의 온라인 친구들이 다녀갔다. 아니 내 장례식에도 그정도는 안올 거 같어. 정말 엄마는 여러모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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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스샘은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도 센스있는 것을 찾아 고른다. 스샘이 지나간 자리마다 집안 곳곳 꽃이 핀 화분, 색색깔의 과일, 아기자기한 소품과 패브릭, 직접 꿰매어 만든 인형, 그리고 고흐의 그림들이 놓였다. 인테리어 전문 앱에 나올만한 그런 집, 나 어릴 때 센스있는 살림살이로 잡지에 소개되기도 한 그녀의 집은 다채로운 색깔과 향기로 넘쳤다. 엄마가 있는 공간에는 항상 다른 곳보다 햇살이 더 많이 비추어 들어왔다.


왜 나는 엄마와 같은 센스가 없지? 여러차례 자문을 해봤지만 답을 모르는건 아니다. 흰색과 우드로 깔맞춤을 해도, 디퓨저를 갖다 놔도, 어쩐지 어둑캄캄한 내 집과는 다른 엄마네의 청량함은 매일매일의 끝없는 노동과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엄마와 아빠는 한 번은 이 문제로 크게 다투었다. 매 시간 먼지가 들어오는 시골집 바닥을 그렇게 쓸고 닦아 무엇하냐고 짜증을 버럭 내는 아빠를 뒤로 하고, 여느 때처럼 부산스럽게 굴던 엄마는 청소도구를 내려놓고 집을 나가 반나절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빠가 세상 곳곳을 찾아 헤매고 나와 남동생이 얼르고 달래는 카톡을 보내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다른 이에게는 정체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촌스러운 이름, 새로 만든 이름, 그리고 공간에 대한 각별한 관심 같은 것 말이다. 공간은 엄마의 정신 그 자체다. 한때는 엄마에게도 인생에서 공간을 놓아버리고 포기했던 시기가 있다. 삶을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던 시기. 놀랄만큼 방치되었던 다 허물어져가던 집. 방치되었던 강아지. 방치되었던 마음들. 세월이 흐른 뒤 엄마는 그 시절을 극복했고 두 다리를 못쓰게 되었을 때 마저도 공간을 가꾸는 일 만큼은 결코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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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아, 하고 엄마가 나를 부른다.


"여기 침대 라인을 똑바로 해줘."


엄마가 천장만 보고 누워 제자리에서 뒤척이며 지내는 통에 침대 커버가 이리 저리 비뚤어져 있다. 엄마는 마비된 다리 못지 않게 비뚤어진 커버가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다. 엄마의 입원 도중 큰아버지가 아빠를 위로하러 집으로 찾아오신다고 했을 때는 엄마의 안달에 못이겨 대청소를 해야만 했다. 나는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정리한 후 인증샷을 찍어 병실에 있는 엄마에게 보내 안심시켰다.


"아빠가 이제 다 할게. 쓰레기도 버리고, 화분에 물도 줄게."


아빠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쓰다듬으며 당신에게 약속했다. 약속이 지켜지기까지는 물론 시간이 좀 필요했다. 엄마가 죽은 후 아빠가 슬픔에 잠겨있는 동안 화분 3개가 말라 죽었다. 화분에 물을 주겠다고 엄마랑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내가 성화를 하자 아빠가 행동을 시작했지만 영 생기가 돌아오는 맛이 없었다. 청소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집 안의 소품과 인테리어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엄마네 집에는 옅은 회색빛이 감돌았다.


"다 있어도 뭐가 없는 것 같다 야."


남편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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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있어도 뭐가 없는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누워 곰곰 생각했다. 일단 그게 없다. 엄마의 집에 가면 한 시간 마다 하나씩 코스요리처럼 나오던 음식들, 그 맛의 갈비찜, 부추전, 오이지, 동그랑땡, 된장찌개 같은 것들 말이다. 나와 남편은 늘 터져가는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에는 살이 2키로 쯤 쪄있었다.


그런게 또 있긴 하다. 버리거나 태우지 못하고 잔뜩 챙겨온 엄마의 옷에는 샤프란 향기가 퐁알퐁알 난다. 엄마의 옷을 인증하는 건 향기가 대부분의 몫이다. 엄마의 옷을 얼굴에 묻고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으니 이 향 또한 곧 옅어질 것이다. 내가 똑같은 섬유유연제를 쓴대도 그건 엄마의 향은 아닐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며 꼬박 잠이 들기 직전, 나는 뭐가 없는지 정확하게 알아채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의 색깔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내 눈에 렌즈처럼 한 겹 씌워져 세상을 비추고 있던 엄마의 레이어, 엄마의 빛 말이다. 우리 엄마는 온 세상을 빛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세계 전체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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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빛내 놓고 저만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 처지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요! 라고 청춘들이 종종 당차게 이야기 한다는 걸 안다. 나 또한 그런 얘기를 곧잘 하며 살았더랬고. 그렇지만 내가 세상에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나는 왜 태어 났는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다. 태어난 순간 이미 세계 전체를 둘러싸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마누라가 나보다 하루만 더 살아라."


남편이 부탁했고 나는 그러마 했다.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입한 앱과 사이트를 뒤져 닉네임을 지연으로 바꿔나갔다. 수 년 동안 입지 않던 옷을 버리고, 보지 않는 책과 듣지 않는 씨디들을 팔았다. 곳곳에 그림과 액자를 놓고 블라인드를 올려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청소한다고 부산 떨던 내가 메리골드 차 한잔을 우려내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정자, 정자, 하고 엄마의 이름을 발음해 본다. 뭐야 예쁘잖아? 소녀 같은 꼬마 정자. 나는 엄마의 이름으로 로고를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촌스럽지도 않고 괜히 태어나지도 않았다. 로고를 그리는 내내 만족스럽고 충만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엄마 이름으로 만든 로고다. 엄마이름 정자에 생각할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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