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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Oct 21. 2022

나의 인생공부

사랑 말고 다른 건 없다는 걸 배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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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해야했을 인생공부가 뭐였는지, 풀어야 할 문제가 뭐였는지는 이다음 나도 엄마가 살고있는 세계에 갔을 때 꼬치꼬치 물어볼 셈이다. 그게 무엇이었든 엄마는 문제를 풀었고, 그래서 자유로워졌고, 겹겹이 두꺼운 몸에서 벗어나 가볍게 날았다.


나는 지금보다 한 겹 바깥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엄마가 여기에서보다 더 재미진 삶을 살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엄마의 실수로 아빠가 마왕 드래곤이 되어버린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엄마가 잘 지내니 흡족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몹시 야속하다. 나를 두고가서, 나만 빼고 재미있어서, 너무 보고싶고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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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양파껍질로 둘러싸인 우주 그리고 별과 닮았다.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중이다. 우리들 마음에 응어리가 지면, 우리 내면에 도돌이표 되는 또 하나의 닫힌 세계가 생겨난다. 모두가 그런 세계를 두 개 이상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콱 막힌 우리 마음의 세계는 그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무언가를 싫어하거나, 억울하거나, 복수하고 싶거나, 한스럽거나 아니면 갖고 싶어 미쳐버리겠거나 하는 식으로 단순하게, 또 맹목적으로 존재한다.


엄마의 그림. 여러 세계를 표현한 것일까?


이런 응어리들보다 조금 더 복잡한 바깥세계는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섬세하고 유연하다. 지금 이 시간을 살고있는 우리는 마음을 둘러싼 바깥의 존재라 직진인 마음보다는 훨씬 부드럽다. 우리는 상처받은 내면을 다스리고 또 숨겨가며, 또렷하게 느껴지는 단순한 감정과 비교해 훨씬 유연한 태도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여러가지 진실을 검토해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불에 데인 듯한 쓰라린 상처는 이따금씩 날뛰며 우리를 곤란한 상황으로 내몰 때가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떠넘긴다. 누군가의 상처를 치료하고, 치유받고 싶어한다. 상처의 진실을 알고싶어 한다. 딱딱한 내면의 세계를, 우리의 응어리 진 마음을 해부하고 해체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인생공부라고 생각한다. 


응어리, 내 마음의 숙제, 상처가 하나씩 풀어질 수록 내 몸도 조금씩 제 역할과 쓸모를 다해간다. 그렇게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과제로 똘똘 뭉쳤던 몸을 하나씩 풀어내고 엄마와 요키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계획대로 잘 죽어가는 중이며,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또 먼저간 이들을 보면서 한결같은 것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ㅡ


사랑을 한다. 매순간 사랑을 한다. 이것 말고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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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이건 사랑이고, 이건 사랑이 아니고, 뭐든지 내식대로 분별하고 나누느라 시간을 다 허비했다. 강아지 요키가 죽었을 때는 이렇게 나보다 훨씬 작고 예쁘고 연약한 존재마저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내가 한심해 오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엄마가 죽은 뒤에는 한동안 나 자신이 쓸모없어진 듯한 낮은 자존감이 나를 끌어내렸다. 나는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을 등졌고, 아직도 증오하고 혐오하고 미워한다. 나는 실수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이 거칠고 한심하며 내게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글을 쓰고 엄마를 떠올리면서 많은게 선명해진다. 한심하게만 보였던 엄마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좌절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엄마의 답답한 머뭇거림도 다 사랑이었다. 엄마가 했던 모든 일 하나하나가, 엄마 그 자체가 사랑이고 색깔이고 향기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이라는게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힘든 역할을 해낸 엄마가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엄마는 나도, 남동생도 사랑하지만 특히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영혼의 단짝인 엄마와 아빠를 지켜보면서, 그 둘이서는 무슨 인생 연극을 속닥속닥 계획하고 이곳에 태어났는지 궁금하다. 나도 태어나서 만난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또 나만의 단짝인 남편을 만나, 나만의 과제를 푸느라 씨름 중이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엄마를 잃은 슬픔에 바닥에 퍼져 누워있을 수만은 없다. 밥을 잘 먹고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속 글을 써 나가려고 한다. 남편과 산책을 하고 농담을 하고 함께 티비를 볼 것이다. 드라이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갈 것이다. 피부관리를 하고 따뜻한 반신욕을 할 것이다. 아빠와 남동생이 건강을 챙기도록 떽떽 댈 것이다. 다리를 못쓰게 되더라도 엄마처럼 아령을 들 것이다. 아령을 들지 못한다면 환상의 세계에서 즐거운 미래를 꿈꾸며 나만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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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9년 동안 엄마랑 재미있게 살았다. 물론 엄마랑 지금도 재미있고. 이따 꿈에서, 그 때 거기서 엄마랑 또 만날 것이다. 이다음 내가 과제를 마친 뒤 엄마의 세계에 합류할 때, 나를 어떤 식으로 데릴러 올건지, 그날 저녁은 뭘 먹을건지 같이 계획해 볼 것이다. 거기에 엄마가 있어서 안심이 된다. 오늘은 허브티나 한 잔 마시자. 항상 할 얘기가 많다. 내가 살테니까. 엄마가 사면 더 좋고. 음... 이제 엄마가 살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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