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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신비스러운 이야기다. 그렇지만 실용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께서는 이번화를 건너뛰셔도 좋다. (사실 안됨) 그렇지만 언젠가 한번쯤 다른 세계로 돌아간 이와 꼭 만나고 싶은 날이 올 때 기억을 해두시면 좋겠다. 지금부터는 내가 터득한 비밀이 있어 나눠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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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과 술에 쩌들었던 일상이 조금씩 잔잔해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가 시도한 것은 꿈에서 엄마를 만나는 일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묻고 싶은 것들 태반이었다. 나는 매일 잠들기 전에 엄마와 만나고 싶은 장소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그려가며 꿈의 세계를 준비했다. 내가 각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소는 아래 두 군데이다.
노란 유채꽃밭 언덕 위, 주변에 꽃이 만발한 작은 2층짜리 통나무집. 구름한 점 없는 하늘이다. 거기에 노란색 롱원피스와 연두색 스프라이트 티셔츠를 받쳐입은 엄마가 있다. 엄마는 17년 전에 먼저 가버린 강아지 요키를 안고있는 모습이다. 나는 그 집에서 엄마와 함께 버섯스프를 먹고 티타임을 할 것이다.
또 한 군데는 숲속의 밤, 모던한 단층집, 넓게 펼쳐진 잔디마당 한 구석의 캠프파이어 앞이다. 나는 거기서 엄마와 함께 불길에 따스해진 모래에 발을 파뭍고, 어깨에는 체크무늬 담요를 덮고 감자와 생선을 구워먹는다. 아요 맛있어~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지근거리에 들릴 때까지 그곳을 상상하고 또 상상한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엄마는 한 달이 되어가도록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을 탐색해 볼 필요가 있었다. 쓸데 없이 진지한 거 아니다.
만날 장소는 있지만 좌표를 설정할 수 없거나 이를 알릴 길이 없다.
엄마는 내가 마련한 장소에 올 수 없고 내가 엄마를 찾아가야 한다.
엄마가 자유롭게 내 꿈에 방문하기 전에 미리 마쳐야 할 일들이 쌓여있다.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 나를 만날 생각조차 못한다.
세번 째, 네번 째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피봇하여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직접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찾아갈 수 있는거지? 엄마와의 추억과 생김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방법을 골몰하다 잠드는 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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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날 며칠 이어진 고민의 밤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존재가 여기에 있다는 기운, 또는 틀림없이 엄마인데 완전히 다른 얼굴, 또는 구겨진 얼굴로 꿈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첫 꿈에 마주한 엄마는 완벽한 각선미를 뽑내고 검정색 파티드레스를 입은 힙한 여전사다. 얼굴은 완전히 다른사람이고, 거기다... 왜 저렇게 섹시하담? 꿈에서도 엉뚱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하니까 일단 패스하자.
기운으로만 나타난 엄마는 이랬다. 엄마의 고독이 분명하게 배어있는 쓸쓸한 세탁기 실 베란다. 운전하는 아빠 옆에 앉아있지만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엄마. 얼굴이나 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나랑 신나게 인형놀이 하는 엄마. 인형놀이를 하는 꿈은 너무 좋았지만 고독한 세탁실은 못내 신경이 쓰였다. 이래가지고서는 대화는 커녕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내게 결정적인 힌트를 준 꿈이 있었다.
어느 날 밤 부엌에 서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무 반가워서 한걸음에 달려간 나는 엄마를 내 쪽으로 돌아세우며 어디봐바, 어디봐 라고 간절히 말했다. 돌아선 엄마의 얼굴이 다 구겨져 알아볼 수 없게 변해있다. 만약 여기서 꿈이 끝났으면 속만 상하고 별 의미를 찾지 못했을텐데 엄마가 내게 또박또박 말을 걸었다. 엄마 얼굴이 변해서 가야해.
나는 꿈에서 깨어 생각했다. 온전한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어떤 조건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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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정적 힌트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다. 얼마전 꿈에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강아지 요키를 만났다. 나는 요키의 꿈을 17년째 꾼다. 나는 실제로 한 마리의 요키만 키웠지만 꿈의 세계에서 요키는 2대, 3대에 걸쳐 영혼을 늘려 영원히 살고 있다. 1대 요키, 2대 요키, 3대 요키는 모두 같은 요키이지만 또 서로 다른 요키다. 어떤 날은 2대가, 어떤 날은 3대가 꿈에 나온다. 요키는 거기서도 모두 죽은 걸로 통하지만, 또 모두 살아있기도 하다.
이눔의 강아지도 생전 고양이 같았던 성격 그대로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서 본 모습을 예쁘게 보여주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날은 1cm밖에 안되고, 어떤 날은 82인치 티비만하다. 어떤 꿈에서는 펄럭펄럭 긴 수건으로 등장하고 어떤 꿈에서는 수조 안에 잠겨있는 털뭉치이다. 그런데 그 날 꿈에 등장한 요키는 유독 온전했다! 소세지처럼 토실토실한 몸과 까만털을 하고 종종대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익숙한 추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죽었지만 살고있는 요키를 쳐다보며 나는 곰곰 생각했다. 쟤는 영원히 살고 있구나. 몇 년 전만해도 죽은건지 산건지가 그렇게 매번 궁금하더니...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 바가 있었다. 꿈에서 누군가를 제 모습대로 만나려면 그 존재가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기도하거나 믿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해야만 한다. 나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재빨리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외쳤다.
"엄마!! 나 꿈에서 엄마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았어!!!"
고개를 돌린 자리에 기적처럼 엄마가 앉아있다. 편안한 갈색 스프라이트 옷을 입고, 흰색 반바지를 입고, 단발머리를 쫑끗 묶고 전보다 명확한 얼굴로 편안하게 웃고있는 엄마는 서른 후반의 나이 정도로 보인다. 내가 엄마의 모습이 진짜에 가까운지 관찰하려고 들자 엄마는 곧 투명하게 사라져갔다. 아...! 이 의심병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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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의기양양하다. 그 후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꿈들은 한결 같다. 이미 저 세계에서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엄마와의 평범한 일상 어딘가 어느 순간에, 여기있는 내 정신이 껴드는 방식이다. 혹시 내가 이미 저 세계에서 엄마와 살고있고, 다만 깨어있는 동안 그곳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다음에 만나면 꼭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얘, 그 ○○ 컴퓨터 학원인가 뭐시긴가 그거 뭐 하나도 쓸데도 없더라. 도대체 그런걸 뭐하러 가르치는지 나원참~!"
**내가 있는 세계에도 진짜 있는 학원 이름이라 지웠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내게 투덜대고 있다. 저 세계의 나는 엄마와 함께 살갑게 일상을 터놓는 사이인가보다. 또 어떤 날은 얇은 하늘색 롱가디건을 걸친 엄마랑 길을 걸었다. 나는 앞서가는 엄마에게 깡총깡총 달려가 팔짱을 딱 꼈다.
"요새 슬픈건 좀 괜찮아졌어?" 엄마가 묻는다. 엄마가 돌아간 것에 적응을 하고 있냐는 물음이다.
"슬프고 힘든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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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꿈이다. 1화에서 소개한 꿈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열차에서 대화하던 엄마와 나는 조금 더 편한 자리로 옮겼다. 우리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엄마는 그새 옷을 갈아입어서, 젊을 때 입던 빨간색 체크무니 후드셔츠, 꽃무늬 두건,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베이지색 치마까지 익숙한 모습 그대로다. 나는 묻고 싶은게 많았다. 엄마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여기와 똑같은지. 거기에도 나와 아빠와 남동생이 있는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엄마, 거기 사는 곳은 어때?"
엄마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지난번 꿈처럼 투명하게 사라지려고 한다. 아, 이 질문은 금기이구나. 나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며 강하게 붙잡았다. 재차 묻는다.
"거기 엄마 사는데 어때?"
엄마가 머뭇거렸다. 거기 사는 곳이라는 표현에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엄마가 너무 곤란하지 않도록 좀 봐주기로 했다.
"원래 사는거랑 똑같아? 엄마 여기 피부 이렇게 만지면 피부가 느껴져?"
"응 느껴지지."
"똑같네!" 나는 감탄했다. 뒤이어 질문한다.
"엄마 거기 세상에도 아빠가 있어?"
이건 틀림없는 금기질문이었다. 엄마가 정말로 대답하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화가난 게 아니라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는 표정이다. 엄마가 특단의 조치로 마법을 부려 내 꿈을 엉뚱쌩뚱한 판타지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어찌나 당황했는지 엄마는 살짝 실수를 했다. 판타지 꿈으로 완벽하게 넘어가기 전에 꿈 속에서 살고있는 아빠의 존재가 느껴진 것이다. 그 세상에도 분명하게 아빠가 있었다. 다만... 엄마가 내게 진실을 감추기 위해 마법을 부리는 과정에서 아빠가 마왕 드래곤이 되어 나타났다. 이건 뭐 어쩌겠어! 웃어야지. 웃어야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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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른 세계에서 나와 아빠와 그리고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확신하건대 남동생과 함께 무척이나 잘 지낸다. 거기에는 또 다른 나, 분명 나이지만 정확히 내가 아닌 조금 다른 나가 있다. 엄마는 혼자 있지 않고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다. 엄마는 완전히 다른 엉뚱한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도 않다. 엄마는 재판을 받고 있지도 않다. 물론 거기서도 또 다른 인생 과제를 해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돌아간 엄마가, 먼저 떠난 요키가, 그리고 먼 미래에 돌아갈 아빠가, 그리고 나와 남편과 다른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영원에 대한 강력한 믿음으로 모든 가능성과 세계를 엿본다. 이것이 내가 그동안 알아낸, 돌아간 이와 영원히 함께하는 방법이다.
"지연아 네 꿈 얘기가 위로가 돼. 어떤 말을 들었는데도 안됐었는데."
아빠는 이렇게 말하고는 깔끔하게 집안 대청소를 했다. 위로가 되다마다. 우리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지내는 것보다 엄마가 잘 지내기를 더 바라는거거든. 그걸 확인했으니까 비로소 위로가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