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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Dec 14. 2023

아홉 살에게 인생 교육을

대체로 교과서 내용이 재미없지만 가끔은 즐거울 때가 있다. 오늘 국어 수업이 그랬다.  

  "자, 이제부터 '돌려 쓰기'를 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의아해한다. 돌려 쓰기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롤링 페이퍼를 우리말로 바꿔 보았다. 롤링 페이퍼(rolling paper). 크고 작은 모임이 끝날 때, 여러 사람이 편지지를 돌려 가며 편지를 쓰곤 했던 게 롤링 페이퍼다. 초등 2학년 국어교과서에 그런 활동이 실려 있다. 다만, 편지 쓰기는 아니고 칭찬 쪽지 쓰기다. 종이 가운데에 각자 자신의 이름을 쓰고 방향을 정해서 종이를 돌린다. 종이를 받은 사람은 종이 가운데에 쓰인 친구에게 간단한 칭찬을 써준다. 교사의 신호에 따라 한 칸씩 종이를 돌린다. 딱히 칭찬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된다. 써줄 말이 없는데 굳이 '가짜로'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쓰게 했다. 어쩌면 그렇게 진지하게 쓰는지, 시험 볼 때보다 더 신중하다. 무언가에 몰입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1년 동안 많이 컸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40분 수업 시간 내내 썼는데도 힘든 줄을 모른다. 다 쓴 칭찬 쪽지를 거두었다. 얼핏 보니 글씨도 정성껏 썼다. 친구들이 써준 칭찬 쪽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나는 뜸을 들였다. 우선, 친구에게 칭찬 쪽지를 쓴 소감을 물었다.

  "칭찬 쪽지를 써 보니까 친구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친구랑 더 친해질 것 같아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점이 꼭 있을 것 같아요."

  등등의 말을 한다. 아이들의 얼굴은 밝았고, 목소리도 부드럽고 평온하다. 그다음으로 칭찬 쪽지를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충분히 행복감을 만끽하게 하고 난 후, 이번에는 자신의 칭찬 쪽지를 읽은 느낌을 말해보라고 했다.

  우리 반 장난꾸러기가 말한다. 장난이 지나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주는 아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그렇게 심한 장난을 쳤는데도 친구들이 나를 칭찬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부터는 친구들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는 김장난(가명)을 보며 '성선설'이 참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늘 지쳐있는 듯하던 이오락(가명)이 손을 번쩍 든다.

  "제가 게임을 얼마나 잘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근데, 게임을 잘하는 건 좋을 수도 있지만, 많이 하는 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오락이는 게임을 줄였으면 좋겠어."

  "요즘은 별로 안 해요."

  "안 하긴, 어제도 전날 밤 11시까지 게임하다가 늦게 자서 학교에도 지각했잖아. 근데 오락아, 그렇게 늦게까지 게임해도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셔?"

  "부모님도 같이 하는데요."

  아이들이 다 같이 말한다.

  "헐~"


  이건 아니다 싶어서, 훈화를 시작했다.

  "예전에 어떤 40대 남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직장에도 다니지 않고 친구도 사귀지 않고 집에만 있었어. 늙은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사는 사람이었지요. 집에서 뭘 했냐면 컴퓨터 게임만 한 거야. 밥 먹고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늘 게임만 한 거지. 가끔은 피시방에서도 하고. 그날도 그 사람은 자기 집에서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지. 식구들은 다 자고 혼자서 컴컴한 방에 앉아 게임을 했어요. 적군을 넘어뜨리고 총 쏘고 고 하는 게임을 했던 거야. 그러다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담배를 찾아보니 담배가 없네. 그래서 담배를 사러 러 편의점으로 가려고 집에서 나왔어요.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자기 앞을 지나가는 거야. 그 여자는 새벽까지 회사에서 일하다가 늦게 퇴근을 하는 길이었어요. 방금 전까지 싸우는 게임을 하던 그 사람은 착각을 한 거야. 게임 속 장면과 지금 자기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그 여자를 해쳤어. 자기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해쳤다고요. 이게 말이 되냐고? 진짜 있었던 일입니다. 이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에 뉴스에 나왔던 사건입니다."

 몇 년 전에 뉴스에서 보았던 사건을 각색해서 말했다. 오랜만에 골똘히 듣고 있던 오락이가 말한다.

  "그러니까 반사회적이 된다는 말이죠?"

  "오호, 반사회적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

  "유튜브에서 들었어요."

  "그렇다니까. 게임에 너무 빠지면 그런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어. 게임을 안 하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어렵잖아. 오락이는 게임 시간을 줄였으면 정말 좋겠어. 조금씩 줄여나가도록 노력해 봐."

  오락이는 컴퓨터 게임, 유튜브 등등 컴퓨터로 놀 수 있는 여러 가지를 하고 있다.


  "여러분, 지금은 부모님이 여러분을 돌봐주고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여러분도 부모님 곁을 떠나 성인으로 살아야 하고, 또 부모님은 여러분보다 먼저 돌아가시고.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가꿔나가야 하는 겁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여러분의 학교 생활을 도와주고 잔소리도 하지만 이것도 방학되면 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좋은 방향으로 가라고 알려주는 사람이지 그 방향으로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자기 인생은 자기가 가꿔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아홉 살 아이들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인생교육'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때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지나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진지하게 듣는 분위기였다.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정으로만 돌아가겠는가.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미래가 불안한 학부모들은 학원에라도 맡겨야 그나마 안심이 되겠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10년이 조금 넘으면 우리 반 개구쟁이,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겠지. 나는 노년으로 접어들고. 어떻게 살 것인가, 그건 나에게도 해당하는 질문이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늘 생각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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