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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Jan 10. 2024

끌신 한 켤레

알아보니, 슬리퍼(slipper)를 우리말로 '끌신'이라고 한다. 내게는 낡은 끌신 한 켤레가 있다. 요 며칠 동안 이 끌신 때문에 마음 조이고 애달았더랬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좋게 말해서 몰입이지, 사실은 집착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걸 고쳐보려고 했지만 잘 안 된다. 이것을 일컬어 타고난 성격이라고 하는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 아프다. 이젠 그러려니 한다. 아, 내가 또 집착을 하는구나,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 편히 가지려고 한다. 내 마음 알아주는 일을 가장 잘할 사람, 나 말고 누가 있나 싶다.


이번 겨울방학 중에 교실 바닥 교체 공사를 한다고 하였다. 내가 보기엔 한참 쓸 만한 것 같았는데 무슨 수선들을 떠는지, 맘에 들지 않았다. 원활한 작업을 위하여 교실 안에 있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사물함 등을 제외한 물품 등을 모두 치우란다. 교실 정리와 청소를 말끔히 하였다. 내 개인 물품은 모두 집으로 가져왔다. 앗, 그런데 끌신이 없다. 그 소중한 끌신을 챙겨 오지 못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가슴은 설레는 일에만 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당황스러울 때도 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어쨌거나 어서 끌신을 찾아야 한다. 그게 어떤 물건인데! 10년이 넘도록 교실에서 내 몸을 받쳐주던 게 아니었나.


10여 년 전, 족저근막염을 앓던 중이었다. 오래 걷거나 서 있으면 발바닥이 아팠다. 정형외과에 가서 체외충격파를 받기도 했다. 염증이 있는 곳에 초강력 충격파를 가하니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가 산고를 치르는 임산부처럼 비명을 질렀다. 체외충격파 치료를 하던 의사가 출입문을 닫았다. 비명 소리가 밖에 있는 사람에게 공포를 유발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뒤꿈치 바닥에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형병원 내에 있는 작은 신발가게에서 그 끌신을 만났다. 한 번 신어보니 얼마나 편하던지. 이불 위를 걷는 듯한 푹신함을 느꼈다. 문제는 가격. 값이 꽤 비쌌다. 내 기억이 맞다면, 40만 원이었다.('kybun korea'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현재 60만 원대로 올랐다.) 끌신 한 켤레에 40만 원이라니. 혀를 끌끌 찰 가격인데, 힘든 병원치료를 받던 내 발을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끌신을 챙기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렇게 그 끌신은 나의 분신과도 같았다.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챙기듯이 그렇게 내 몸같이 여겼다. 그런 끌신을 잃어버렸으니 내 상실감이 어떠했겠는가. 곧바로 차를 몰아 학교로 갔다. 방학 중이라 학교는 한산했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는 몇몇 아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교실로 올라갔다. 아직 작업은 시작되지 않았는지 교실이나 복도에 오가는 사람이 없다. 교실 안에 있던 옷장과 책상 그리고 사물함 청소함 각종 교구들이 복도 한편에 나와 있다. 그 옆에 학생용 책걸상이 포개져 쌓여 있었고 모든 교구에 투명 비닐을 씌웠으며 중간중간에 테이프로 비닐을 고정시켜 놓았다. 내 끌신은 옷장 맨 아랫칸에 놓아두고 사용했더랬다. 이중으로 쌓여있는 학생용 책걸상이 옷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저 옷장을 열 수 있을까. 마치 젠가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책걸상을 빼내야만 했다. 한참을 궁리했다. 저걸 빼내면 되겠구나, 결단을 내렸다. 테이프를 서너 개 떼어내고 비닐 속으로 들어갔다. 정전기로 비닐이 머리카락에 달라붙었다. 발걸음을 옮겨가며 책걸상을 살며시 빼냈다. 드디어 옷장을 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내 끌신은 없다. 옷장을 열고 손을 깊숙이 넣어 휘저어 보았는데, 손끝에 닿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를 어쩐다, 도대체 이 끌신은 어디에 있을까. 공사 업체 직원이 옷장을 옮기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나, 끌신이 워낙 낡아서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나, 아니면 툭 떨어지니 얼결에 학생용 책상 속 어딘가에 던져 넣었나, 오만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고 이중 삼중으로 쌓여 있는 학생용 책상 속을 다 뒤질 수도 없는 터.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다시 책상을 원위치시키고 행정실로 갔다. 행정실장이 방학 중에 어찌 학교에 왔느냐고 의아해했다. 자초지종을 말하니, 절대로 업체 직원이 버릴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닥공사 끝나고 교실로 책걸상을 넣을 때 와보라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그 길로 교문을 나왔다.


집에 와서도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따뜻한 유자차를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왈츠를 틀었다. 기분전환을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다. 유젠 도가(Eugen Doga)의 왈츠를 듣는다. 유젠 도가는 러시아 작곡가이다. 그는 합창곡 교향곡 교회음악 영화음악 등을 작곡했다. 왈츠 곡은 70여 편이나 된다고 한다. 다 듣지는 못했고 내가 즐겨 듣는 왈츠곡은 'My Sweet and Tender Beast', 'Waltz of love',  'Gramophone'이다. 차 한 잔을 다 마셨는데도 진정이 안 된다. 우유 한 잔을 데웠다. 다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재즈 모음곡 2번 중 왈츠 2번'을 들었다. 쿵 짝짝, 쿵 짝짝. 아무리 곡조를 따라 해도, 헛헛한 마음은 일상을 흩트린다.


그러구러 나흘 째 되던 날,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장을 보고 차 트렁크를 여는 순간, 내가 그토록 찾던 끌신이 보였다. 언제 네가 여기 들어와 있었느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끌신을 차에 실은 기억이 전혀 안 난다. 이걸 가지고 남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얼굴도 못 본 공사업체 사람에게 미안했다. 누굴 탓하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이 덜렁대는 탓이지. 찾아서 자세히 보니 낡기는 많이 낡았다. 누가 보더라도 쓰레기로 여길 만하긴 하다. 행정실장에게 전화했다. 찾았다고.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전화 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한다. 마음결이 곱고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소란 피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돌아온 끌신이 한 마디 한다.

  "너 자신을 의심하라!"

빈센트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 (사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 다음은 상실의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들은 왈츠곡입니다. 기쁜 일은 더욱 기쁘게 하고, 슬픈 일은 더 이상 슬프지 않게 해주는 묘약과도 같은 음악이지요. 에게는.

Waltz ("My Sweet and Tender Beast") (youtube.com) 


Waltz "Gramophone". Piano - Maestro Eugen Doga. (youtube.com)


'Jazz Waltz' �(D.Shostakovich) │Violin,Cello&Piano (Suite No.2)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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