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밝은 눈'이 필요해

by 강지영

스무 살이 넘어서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면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얘기가 깊어지면 세상을 너무 어둡게만 보는 것 같다. 내 마음도 덩달아 침울해지곤 했다. 다음 글을 읽으면서 그 친구를 떠올렸다. 아,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인 라우라 비스뵈크의 <내 안의 차별주의자>에 들어 있는 글이다. 다소 긴 듯하지만, 어느 문장에서도 쐐기를 칠 수 없을 만큼 공감 가는 대목이어서 그대로 옮겨본다.


“타인에게서 악을 보면 흑백 논리에 따라 자신의 세상은 자동적으로 선이 된다. 부정적 적개심이 긍정적 자아상을 불러낸다. 윤리적 혹평은 남들을 우리 사회에서 배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핑곗거리다. 그륀은 세상에 접근할 때 위험을 전제로 하느냐 아니면 호기심으로 다가가느냐가 어린 시절의 경험에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서 자신의 감정과 인식을 인정받지 못해 위협받는 경험을 많이 한 경우, 아이는 자라 기피와 거부의 태도로 세상을 대하게 된다. 시선은 위험을 향하고 인식은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향으로 축소된다. 낯선 것은 불안과 불신을 조장하고 분노와 공격성이 실존과 생존의 핵심이 된다. 혹은 심리학자 카를로 스트렝거(Carlo Strenger)의 말대로 ‘인간 행동의 가장 깊은 동기는 자유에 대한 두려움’ 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처벌과 멸시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은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지, 무엇이 위험할 수 있는지 잘 구분하지 못한다. 변화와 새로운 것을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에 불신과 거부로 반응하게 된다. 그 반대편에는 자신의 인식과 욕구를 자아의 핵심으로 만들 수 있었던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아이들의 경험에서 세상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다. 따라서 이들은 낯선 것을 보면 불안이 아니라 호기심을 느끼고 주변 세상에서 자극과 발전 가능성을 찾는다.

위험한 세계관과 적개심은 음모 이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불확실한 것 뒤편에 숨은 조종꾼을 찾고 싶은 욕구는 음모 이론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맹목적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세상만사에는 뚜렷한 의도가 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이 없을 수 없다. 세상은 예측과 통찰이 가능하고 구조가 단순하며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이론에 동조하기 쉽다. 재앙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면 앞으로는 재앙을 막을 수 있고 세상을 쉽게 이해하고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남들은 언론이나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만 자신만은 절대 속지 않고 기밀을 알아내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우월 의식이야말로 음모 이론의 동조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기분은 특히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하기 힘든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 음모 이론은 정치적 중도보다 좌우 양극단에서 많이 나타나며, 그중에서도 우익 쪽의 빈도가 훨씬 높다.”(230~231쪽)


요즘 세상이 참 어수선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지구촌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코로나 우울에 걸려 상담전화가 급증한다고 한다. 결혼율과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여러 사건들 - 법무장관의 자녀 문제, 서해상의 공무원 피살 문제, 등 - 도 정치에 등을 돌리게 만들기도 한다. 혹은 정치에 무관심해지거나 어느 쪽을 지지할지 몰라 ‘무응답’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또 늘어나는 것이 있다. 바로 ‘가짜 뉴스’다.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고 자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 방송이 가능한 유튜브를 보면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와 다른 내용들이 넘쳐난다. 나만이 알고 있다는 우월 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쏟아낸 영상이다. 의심과 불신과 독선이 자리한 속에는 차별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세상을 너무 좋게만 보는 것도 안되고 세상을 너무 나쁘게만 보아서도 안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제대로 볼 수 있는 ‘밝은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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