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그 후

(1990년 1월의 기록)

by 강지영

(사진출처 : 인터넷)

신혼여행을 마치고 시가에 도착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큰아들 장가보낸다고 집단장을 했는지, 번들번들한 초록색 페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급히 칠하느라 그랬는지, 철문 옆 시멘트 기둥에도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페인트붓 자국이 조금 묻어 있었다. 새사람 오네, 라는 목청 좋은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웃 사람들까지 구경을 나왔고, 누군가는 담장 너머에서 고개를 쭉 빼고 보고 있었다. 키가 작은 이가 까치발을 서서 보다가 그랬는지, 잠시 기우뚱하는 것까지 보였다. 친정집과는 달리 시가 동네는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었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새사람은 또 뭔가.


앗, 한복치맛자락을 치켜들고 대문 두 계단을 올라서려는 순간, 잊을 뻔했다. 들어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지. 신혼여행 가기 전에 시어머니가 준 작은 종이뭉치 두 개가 있었다. 신혼여행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종이에 싼 것을 대문 양 쪽에 던져버리고 오라는 것. 이유는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종이 속에는 오색 실타래가 몇 가닥씩 들어 있다는 것만은 귀띔해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든 순간, 뭔가 나쁜 기운을 버리고 오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부정탈지도 모르니 아무에게도 그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정말 기이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어머니는 부적이라든가, 그런 미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미신을 믿다 보면, 미신에 의지하면, 오히려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나는 울엄마가 매우 합리적인 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오색실 던져버리는 일에 내가 의심을 품어서 '효험'이 없었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를 구경하는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의 고질적인 단점은 '표정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인데. 동물원의 원숭이가 이런 기분일까, 상상했다. 장손이 장가간다고 결혼식에 여럿 왔던 친지가 아직도 시가에 머물렀던 것이다. 마루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 주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할머니가 절을 받으려고 공단으로 만든 반들반들 광택 나는 방석에 앉아 있다. 우리 둘은 시할머니에게 절을 올렸다. 다음으로 시부모가 앉은자리로 방향을 틀었고 또 절을 드렸다. 그다음으로 시숙부 내외에게 절을 했다. 작은 상차림이 들어와 시할머니 앞에 놓였다. 시할머니 상에서는 시아버지와 시숙부가 자리를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상으로 자리할 차례였다. 큰 상이 들어오니 방안이 꽉 차서 사람들은 벽에 등이 닿을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날라 오고,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는 먹는 거 말고, 방에 가서 누워 쉬고 싶었다. 신랑은 여섯 살이나 어린 신부가 고단해하는 것이 안쓰러웠으나 어른들 눈치가 보여 참았다. 그는 귀엣말로 조금만 참자고 했다. 나는 그가 고마웠다. 길고 긴 저녁식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마치자, 멀리서 온 친지들은 대문을 나섰고, 시댁 식구 몇몇은 방으로 들어가고, 그와 나는 마침내 신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일가친척이 많은 것이 자기 잘못인 양 기를 펴지 못했다. 나는 그가 안쓰러웠다. 사람들은 장손, 우리 장손이라고 부르며 얼마나 많은 짐을 지워 주었을까 여겨져 그가 가엾기까지 하였다. 무려 33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의 어깨에 실린 장손의 무게가 얼만큼일지 상상해 보고 나는 진저리를 쳤다.


늪으로 빠진다는 것이 이런 걸까. 심신이 지친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아침이 되었다. 새댁이 된 나는 한복을 입고 시할머니 방에 들어갔다. 시할머니는 누워 있었다. 소매 밑으로 나온 손목과 손등 주름은 간신히 뼈를 감싸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백발이었고, 몸은 가냘팠다. 쳐진 눈꺼풀 때문에 눈동자는 겨우 보였다. 나는 그렇게 나이가 많은 노인 여성을 가까이 본 적이 없어서 흠칫했다. 친정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전혀 기억에 없다. 잠시 후, 그가 들어와서 함께 절을 했다. 시할머니는 첫날만 절을 하고 내일부터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절을 마치자, 그는 시할머니에게 몸은 좀 어떠냐고 살갑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픈 데 천지라고 하더니, 노인네가 다 그렇지 뭐, 라고 하면서도 자기 몸을 주물러 주는 손자의 손길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부엌에서는 덜거덕덜거덕 법석이 났다. 그가 나가보라고 눈짓하여 나는 부엌으로 갔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할머니 방에서 오래 머물러서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나에게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에게 왔냐는 짧은 말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노. 력. 했다. 불편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였다. 그이는 어서 준비하고 장모님 뵈러 가자고 했다. 내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 그이뿐이었다. 그이가 처가댁에 인사하러 가겠다고 하니까, 시어머니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 그렇게 일찍 가냐고 했다. 나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시가의 시계는 달리 가고 있나, 생각했다. 친정은 걸어서 1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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