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과 시가의 차이

(1990년, 주말부부로 7개월)

by 강지영

처음 한 달간은 시가살이도 할 만했다. 남편이 인천으로 가기 전까지는. 결혼식을 올리고 한 달이 지난 후, 그러니까 그가 근무하는 학교가 개학을 맞이하면서 그는 인천으로 가야만 했다. 나는 시가에 혼자 남아 대전시 신탄진 초교로 출퇴근을 하였다. 시댁 식구들은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화보다는 침묵이었고, 크게 웃는 일도 별로 없었다. 늘 조용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이상했다. 자연스레 시가에 들어오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남편이 부재한 상태에서 일상생활이 뭐가 재미가 있겠나. 만약 내가 외향적 성향이 강했거나 사교적이었다면 그런 시가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외향적이라고 생각한 내가 사실은 내향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고요한 시가의 분위기에서, 나는 친정 생각이 절로 났다. 친정은 낮에 문을 닫아도 환했다. 시가는 달랐다. 집중해서 뭘 봐야 할 때가 아니면 불은 꺼져 있었다. 대체로 방 안이 어두웠다. 친정에서는 가난해도 힘들어도 늘 웃음꽃이 피어나곤 했었다. 고단한 농사일에서도 부모님은 늘 다정하셨다. 오일장에도 늘 같이 다니셨다. 집안일 모두 함께 의논하고 함께 일하셨다. 잠자리에서는 아버지가 늘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 얘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그만하라고 하던 엄마도, 이야기가 시작되면 우리들과 함께 재미나게 듣곤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쯤까지는 엄마랑, 아버지랑, 동생 둘이랑 다섯 명이 한 방에서 잤다. 윗방에는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자고. 큰언니가 시집가고 작은 언니가 시집가면서 내가 여동생과 윗방을 쓰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무슨 무슨 말들을 나누곤 했었는데, 새벽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런저런 얘기하는 소리에 깨곤 했었다. 주로 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누구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잘못한다는 얘기, 혹은 누구네 며느리는 잘한다는 얘기, 누구는 며느리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얘기,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는 얘기, 누구와 누구가 눈이 맞아 야반도주했다는 얘기, 요사이 돼지가 밥을 잘 먹지 않아 걱정이라는 얘기 등등. 나는 부모님의 대화에서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여럿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있는데, 그 작은 방에서 여럿이 함께 자는데, 언제 어떻게 동생들이 생겨났는지 미스터리다.


감정에 휩싸여 살 때는 사소한 것까지 예민하게 만든다. 위 수술을 했으니, 앞으로 쭉 짜고 매운 자극성 있는 음식은 금물인데, 그걸 지키기가 힘들었다. 그것마저 스트레스였다. 시가의 반찬은 뭐든 얼큰하게 뭐든 매콤하게였다. 다만 시할머니 반찬은 예외였다. 근데, 시할머니 반찬은 너무 밍밍하고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내가 반찬을 하면 바로 해결될 일인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오전 7시쯤에 시외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반찬을 만들 여력이 없었다. 며느리로서 음식 준비를 해야 함은 알고는 있었으나, 아는 대로 실행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도시락 반찬은 부실했다. 그 당시는 교사나 학생이나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던 때였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 주었는데, 이제는 내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같은 학년을 맡고 있는 교사끼리 한 교실에 모여서 싸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였다. 어느 날, 선배 교사 한 분이,

"강 선생은 늘 반찬이 똑같네. 쯧!"

라고 말하였다.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도 나는 서러움이 복받쳤다. 눈물을 참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울음을 쏟아냈다. 그게 뭐 별거라고 한마디 한마디가 노여웠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시가살이는 상상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좋지만은 않았다. 집보다는 바깥이 편했다. 퇴근하면 친구들을 불러내 시간을 때우고 일부러 시가에 늦게 들어가기도 하였다. 혼자 보는 영화도 즐겼다. 어떤 때는 친정에 가기도 했다. 퇴근하고 친정에 가면 엄마는 제일 먼저 이부자리를 펴 주었다. 누워서 한 숨 푹 자라고 했다. 자고 나면 밥상을 차려 주셨고, 김치 옆에는 찬물도 있었다. 김치가 매우니까 헹궈먹으라고. 엄마는 내가 시가에 늦게 들어가서 혹시 미움을 살까 봐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친정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그에게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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