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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Nov 23. 2023

신의 성품을 연습하기 좋은 때

긍휼과 공감

날씨가 추워지고 한 해의 끝이 다가올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라는 인물을 통해 19세기 당시 차갑고 배타적인 영국 교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은 당시 빈곤과 차별로 고통받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구제의 마음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크리스마스 정신'으로 남아 있다.


돈을 모으는 것에만 재주가 있지 돈을 가치 있게 쓸 줄 모르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자기와 비슷한 형태의 삶을 살다가 죽은 친구 말리의 유령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말리는 쇠사슬에 묶인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스크루지 앞에 나타나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아가라며 간곡히 부탁한다. 자기만족에 취해 살았던 지난날 자기 삶을 사무치게 후회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어서 스크루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과 차례로 만나 자기 삶의 총체적 모습을 목격한다. 과거 유령은 왜 스크루지가 지금의 피도 눈물도 없는 구두쇠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현재 유령은 그가 주변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는데도 여전히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이가 있음을, 미래 유령은 그가 죽은 후 아무도 애도하는 이 없는 쓸쓸한 무덤가를 보여준다.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깬 스크루지는 맑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다. 그의 눈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가 쏙쏙 들어왔고, 기쁜 마음으로 자선을 베푼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표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제할 때 바탕이 되는 정신은 동정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이다. 특히 일상적 용어로 잘 사용하지 않는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불쌍히 여겨 돌봄'이라는 뜻인데, 자비로운 신의 성품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이기도 하다. 구약 성서에서는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 '헤세드'가 '인애', '사랑', '자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무려 150회 이상 언급된다. '헤세드'로 묘사된 신의 사랑은 언제나 선하고, 사랑이 넘치며, 다정하고, 실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며, 일관성이 있을 뿐 아니라 성실하고 완전하다.  


성실한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다.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이며, 아무런 조건 없이 생명을 불어넣는 사랑이다.


"세상에서 쌀만큼 귀한 건 없단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쌀처럼 귀한 사람이 되렴." -그림책 [꽃밥] 중에서-


"살려주세요" 부르짖는 위험에 처한 타자의 부름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자신의 안위를 계산하지 않고 뛰어들어 생명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어서 타인의 딱한 사정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머, 어떡해'하고 마음 아파 하지만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인간의 속성은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선하면서도 악한 불완전한 존재다.  동시에 사랑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이 없고,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도 없다.


며칠 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다가 '두둑' 소리와 함께 허리를 삐끗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허리를 구부리거나 돌릴 수 없는 뻣뻣한 상태가 되었다. 앉고, 서고, 눕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나이 드신 부모님이 "아이고, 허리 아프다" 하실 때의 불편함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다.  허리 통증으로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밤을 보내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다. 어쩌면 고통은 남과 함께 지거나 대신 져 줄 수 없는 오롯이 자기만의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쪽 짜리 공감일지언정 누군가 나의 불편함과 아픔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공감해 주고, 손이라도 한 번 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다.


긍휼은 자기 중심성과 대척점에 있다. 온 우주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품을 수 없는 성품이 긍휼이다. 긍휼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나의 어려움처럼 시급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며, 다른 사람의 슬픔이 나의 것인 양 뭉클하고 아프게 느껴지는 공감의 태도다.  나 먹고 살기에도 분주하고 여유가 없는 삶이라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은 한 번쯤 자비로운 신의 성품을 연습하기 가장 적합한 때다.  타자의 입장에 서 보는 일만으로도,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 있게 보는 것만으로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타자의 눈으로 보고, 타자의 마음으로 느끼고, 타자의 피부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야만 동정이 아닌 긍휼을 베풀 수 있다.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의 조카 입을 빌어 크리스마스 정신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친절과 용서, 자비가 가득한 참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별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가는 길동무로 생각할 때는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거든요."


자비로운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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