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3]을 시작했다. 노래하지 않으면 마음이 들끓는 수많은 무명 가수들의 열전이 뜨겁다. 노래하기를 열망하고 노래하는 무대가 간절한 무명 가수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래 사랑이 대단하다. 노래하기를 간절히 열망할 뿐 아니라 자기 목소리에 가잘 잘 맞게 해석하여 리듬을 타는 가수들의 무대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도 어마어마하다. 열망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열망하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에게 압도된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달될 때면 온몸에 전율이 돋는다.
반면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되지 않은 채 일해야 할 때면 쉽게 지치고 피곤해진다. 일하면서도 도저히 의미 찾기가 어렵다. 그럴 때면 손가락 까딱할 힘이 없다고 느낄 만큼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생체리듬이 느려지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삶의 리듬을 조절하는 내부 장치가 고장이라도 난 듯, 과수면과 불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수면장애를 겪기도 하고, 폭식과 거식 사이를 널뛰며 흠칫 놀라기도 한다. '우울'이가 몰래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하고 싶은 것, 그것도 간절하고 열렬히 바라고 원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사랑이든 공부든 일이든 어떤 것이든 하고 싶어서 뛰어들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도 모처럼 목숨 걸며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의 감격과 희열은 어떠한가. 생에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이다. 온종일 몰입해도 힘들지 않고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구친다. 성공과 성패는 나중의 문제다. 하고 싶은 일을 열망하는 과정이 행복이다. 열망의 대상을 외면하더라도 언젠가는 돌고 돌아 언젠가는 또다시 그것을 열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열망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의 부름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비교문화학자 '마리 루티(Mari Ruti)'는 좋은 삶이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기질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중요한 과제는 사회적 기대와 바람을 좇아 순응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소 불안하고 불확실하더라도 욕망의 특수성과 기질의 독특함을 발견하고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책 [가치 있는 삶]의 원제목 ‘The Call of Character’(기질의 부름)는 책 내용을 훨씬 더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가치 있는 삶이란 기질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삶, 즉 본성에 충실한 가장 자기 다운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열망하는 삶이다.
자아란 우리의 소유물(또는 성취)이 아니라, 타인을 포함하여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으며 서서히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균형 잡히고 차분하며 평온한 삶에 대한 우리 문화의 이상은 상당히 공허해 보인다. 때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삶이 가장 보람 있는 삶이기도 하다. 인간의 욕망에는 놀랄 만한 특수성이 있으며 바로 이 특수성이 우리가 가진 기질을 현실에서 발휘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특수성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의 기질과도 더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우리가 이 특수성을 충실히 따른다면 우리의 기질을 억압하려는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에 더 제대로 저항할 수 있다. -마리 루티. [가치 있는 삶] 중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지난날을 돌아보면 빙그레 자동 미소가 지어진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선생이란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이므로 학교는 나의 배움터였고, 학교도서관은 틈만 나면 즐겨 찾던 나만의 놀이터였다. 수업공동체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확실히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단언컨대 해가 갈수록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식기는커녕 커지기만 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내가 가장 원하고 열렬히 추구하는 일이었을 뿐 아니라 홀로 조용히 연구에 몰입하는 시간 또한 나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 있다.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그때 내게는 더 이상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어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더 많이 감당하면서도 번 아웃을 오래 앓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몸이 아프면서까지 일을 놓지 못했고, 매일 안간힘을 다해 버티면서 하나 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나의 삶은 점점 ‘나’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숨쉬기 위해 살기 위해 온 마음으로 자유를 열망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가속 페달에 올려져 있던 오른발을 떼서 브레이크 페달을 꾸욱 밟고 멈춰 섰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경험의 총합이다. 과거의 자랑스러운 성취뿐 아니라 후회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실수조차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경험이다. 본래의 ‘나’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한 저항정신이 있는 한 앞으로도 나는 ‘나’로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토록 열망하는 자유를 얻었고, 쉼의 시간을 지나서 나는 다시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본래의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높은 산의 정상을 찍고 내려왔지만, 나는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고 있다. 그저 산을 오르며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즐겁다. 설사 산을 오르며 또다시 고통과 좌절의 순간이 온다 해도, 그 또한 나의 자유의지로 견디며 맛보게 될 찬란한 경험일 걸 알기에 아직은 하산할 생각이 없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