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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Jan 02. 2024

이런 사람 하나 있으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사람 

창밖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고요했던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추운 겨울, 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나무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겨울바람을 맞고 있어요. 아무것도 가릴 것 없고,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그 모습 그대로 꼿꼿하고 멋있는 겨울나무.  


부지런히 다음 봄을 준비하는 나무야.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두고, 
보이지 않는 너의 뿌리에 차곡차곡 에너지를 쌓아 ,
다시 한번 피어날,
봄을 기다리는 너의 모습이 멋지구나. 


아마 나무는 어느 따뜻한 봄날, 햇살이 대지를 비추며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겨우내 비축해 두었던 생명의 에너지를 폭발하듯 터트리며 꽃을 피우고 파릇파릇한 새잎을 만들겠지요. 


겨울 매서운 찬바람에도, 바싹 메말라 쪼글쪼글한 모습으로 나무에 꼭 붙어 있는 나뭇잎이 있어요. 때가 되어 이제 떨어질 만도 한대 결사코 붙어있는 나뭇잎은 아픈 상태라고 해요. 자연이 순환하는 질서와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낙엽이 건강하다고 하죠. 때가 되면 부모와 분리되어 학교나 사회로 나가 독립을 해야 하는데,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가 자녀를 과잉보호하고 믿지 못해 놓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죠. 인간은 자기 선택과 경험으로 성장하고,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 비로소 자기 다운 삶을 살 수 있으므로 의 분리와 독립은 매우 중요한 발달과제예요. 때론 원하던 일을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고, 때론 힘껏 노력해도 기대하던 바를 얻지 못하고 좌절할 때가 있어요. 실패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된다면 마음은 이전보다 단단해지고 한층 성숙해지죠. 


겨울 같은 마음이 유난히 오래 지속되는 사람이 있어요. 상처받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아프고 힘든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이에요. 그의 마음은 꽤 오랫동안 춥고 힘들었는데 아직 봄은 멀기만 해요. 그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과연 나도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자기 의심에 사로잡혀 두려워지고, 아무도 자기를 무시하지 않는데도 열등감을 느끼고, 관계가 단절된 듯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왜 사는지 의미를 찾지 못해 허무하고, 세상이 내편이 아닌 듯 원망스럽기만 하죠.


마음의 겨울이 길어지는 사람에게 이런 사람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따뜻한 봄바람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조심스레 '똑똑'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만약 그가 문을 연다면 '후우~'하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말이에요. 삶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상처나 아픔이 있어요. 저도 한때 느닷없는 사고 후유증으로 한동안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때가 있었어요. 입 밖으로 아프다는 말을 못 해 상처를 더 크게 키우던 때 말이에요. 오랫동안 마음속에 감춰놓은 비밀스러운 상처는 낫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깊어져요. 외부 세계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어요. 내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기꺼이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어도 마음 문을 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죠.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보는 사람, 자기만의 속도대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살아온 시간 동안 꽤 괜찮은 구석이 많았음을 발견해 주는 사람, 괜찮다고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연결감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울고 싶을 때 말없이 어깨를 슬며시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을 꼭 안아주고 격려하는 사람,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 실수나 허물을 들춰내어 꼬집기보다 슬쩍 덮어주며 다정한 말로 다시 한번 해 보라고 기회를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넘어져도 아파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은 캄캄한 마음 구석구석 한 줄기 빛과 따스한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니까요. 


마스다 미리의 그림책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에는 마음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외침과 그에 응답하는 다정한 목소리가 있어요.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말아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나는 쉬고 있어요."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크기가 달라요."
"우리는 모양도 달라요." 
"비교하지 마세요.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져요."
"마음이 작아지면 마음이 떨려요."
"마음이 떨리면 몸도 작아져요." 
"어둡고 슬픈 마음"
"슬픈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내 마음에 있어요."
"왜 못하는데?라고 묻지 마세요." 
"우리는 모르는 게 많아요. 말 못 하는 마음도 많고요." 
"잡아당기지 마세요."
"누르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하나 달라요. 하나하나 걸리는 시간도 달라요." 
"그러니까 빨리빨리라고 말하지 마세요."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몸과 마음이 잔뜩 위축되어 한없이 작아지고, 구덩이라도 파서 그 안에 숨고 싶어질 때 나를 믿어주고, 편견이나 판단 없이 나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그는 캄캄한 구덩이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하지 않아요. 그는 나의 구덩이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내 곁에 다가와요.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못하지만,  나의 아픔과 상처를 따뜻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아요. 중요한 것은 그가 있는 곳으로 나를 성급하게 잡아끌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있는  곳으로 그가 와서 아무 말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죠.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도록 내게 와 주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그가 나를 말없이 기다려준다면, 조금 더 나만의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기다려준다면 더욱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언제쯤 구덩이 밖으로 나갈지는 아무도 결정해 줄 수 없어요. 순전히 나의 선택으로만 발걸음을 뗄 수 있으니까요. 내가 진심으로 구덩이에서 나가고 싶다고 느낄 때 마음은 겨울을 지나 봄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어요. 


"천천히 갈게요." 
"천천히 와요."
"뒤집어져도 웃지 않을 거죠?" 
"웃지 않을게요."
"기다려 줄 거예요?" 
"기다릴게요."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게는 우정이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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