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왕, 그리고 농부
태국에서 방콕 다음 2번째로 큰 도시, 치앙마이. 요즘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부터 여행 유튜브에서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죠.
우리가 “치앙마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 한 달 살이, 저렴한 물가 또는 맛있는 음식과 풍부한 과일이죠. 근데 치앙마이가 태국 커피 수도라는 점 혹시 아셨나요?
실은 저도 몰랐는데 최근 치앙마이 보름 살기 통해 알게 되었어요. 또한 태국의 이웃 인도네시아의 커피는 들어봤지만, 태국 커피는 다소 생소했어요. 그런데 태국은 전 세계적으로 커피 수출 국가 중에 25위이며, 생산하는 커피는 심지어 내수로 거의 다 소비가 된데요.
대형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치앙마이에서는 자기만의 개성과 차별성이 명확하게 있고 수준이 높은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거의 골목마다 있더라고요. 심지어 한국 대형 브랜드가 한때 매장을 오픈했었지만 2년 후 철수할 정도로 로컬 수준이 꽤 높은 편이에요.
그럼 치앙마이는 어떻게 태국의 커피 수도가 되었고, 어떻게 이런 높은 커피 수준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이번 탐구Q 시리즈에서는 아래와 같이 세 편으로 나눠서 설명해 드릴 예정이에요.
1편 : 마약, 왕, 그리고 농부 - 치앙마이 커피 역사
2편 : 커피 르네상스 - Akha Ama의 스토리와 현재 환경
3편 : 치앙마이 추천 카페 - 아이스라떼부터 드립커피까지
자, 그럼 이제 1편, 치앙마이 커피의 역사에 관해 탐구~Q!
치앙마이는 태국 거의 최북단에 위치한 내륙도시이고, 방콕에서는 서울 부산 왕복 거리 700 km 떨어진 곳에 있어요. 전체 면적은 2,303 km²으로 제주도 보다 대략 25%가 더 크고, 인구는 130만 명으로 제주도 비해 대략 2배예요.
해발 310m로 서울 비해 8배 이상 높고 산맥이 많으면서 아열대성 기후도 있어요. 건기와 우기도 명확하게 있고요. 이런 조건들이 전 세계 최고의 원두, 아라비카(Arabica)를 재배하기에 딱 좋은 편인 거죠.
그런데 마약인 아편을 재배하기에도 좋은 편이에요.
실은 치앙마이와 주변 산맥에서는 커피 전에 아편을 주로 재배해 왔어요. 1962년 태국-UN 보고서를 보면 치앙마이 시골 한 가구 당 1,400평, 많게는 2,000평에서 아편을 재배했어요. 1958년에 태국에서 아편을 불법으로 지정했지만 위반 관련 구체적인 정책이 없었고, 농부들에게는 당장 더 좋은 대책이 없어서 많은 가구들이 아편을 계속 재배하고 어떡해서든 생계를 어렵게 유지해 간 거죠.
치앙마이와 주변 산맥은 아쉽게도 빨간 아편꽃이 피같이 번졌고, 환경도 파괴됐고 마약 중독으로 인해 가난과 재난도 잇따랐어요.
그 와중에 1969년 태국 왕 라마 9세가 산맥에 거주하고 농사하는 원주민들을 처음으로 찾아갔어요. 왕은 그들의 가난과 고달픔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농부들에게 더 좋은 삶을 주기로 결심하신 거죠.
그 이후 왕자 Bhisadej Rajani에게 솔루션을 찾아오라 지시를 하셨어요.
이 왕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죠. “아니… 북부 산맥에 그 많은 아편을, 내가? 어떻게? 그리고, 수많은 농부들의 삶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들지?”
어느 날 왕자가 그의 답답한 마음을 호텔 바에서 맥주로 달래는 와중에 어떤 미국인이 합석을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미국인이 제안을 하죠.
“왕자님, 우리 북부 산맥에 아라비카 커피를 재배하면 어떨까요? 파푸아뉴기니 식인종들도 성공적으로 잘 지배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을 겁니다.”
왕자는 솔깃해 파푸아뉴기니 식민지 본국인 호주 정부에 연락을 해서 커피 씨앗을 받게 돼요. 이렇게 해서 태국 커피 문화가 시작이 된 거죠.
4-5년 뒤, 1974년에는 북부 산맥에 아편 대신 다양한 커피가 재배되고 있었어요. UN, 미국과 다른 국가들도 태국의 마약을 줄일 수 있다는 희망에 자금적인 지원뿐만 아닌 커피 전문성을 많이 전파해 줬어요.
다만, 농부들은 아라비카 커피라는 생소한 열매를 거의 5년 동안 열심히 재배하고 있었지만, 아직 수학을 못 한 상태여서 수요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한마디로 불안했던 거죠. 참고로, 아라비카는 씨앗을 심고 수학까지 평균 3년에서 5년이 소요돼요.
왕은 주기적으로 농부들을 방문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고, 조만간 도움을 전달해 줄 예정이니 안심하고 더 많은 커피를 재배하라고 설득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몇 년 노력 통해 한 농장의 첫 수학이 나왔어요. 총 10kg. 물론 많지는 않았지만, 이 첫 수학을 왕에게 바쳤고, 왕은 바로 연구원들에게 전달하면서 앞으로 100만 아라비카 씨앗이 재배될 수 있게 하라고 지시를 하셨죠. 결국 이 10kg 수학이 100만 아라비카 커피나무가 된 셈이죠.
자, 그럼 커피 원두 공급이 되니 이제 수요가 필요하겠죠?
UN은 수요를 찾기 위해 원주민들의 굿즈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로컬 사업가에게 아라비카 원두의 시장을 찾아 달라고 제안을 해요. 사업가는 콜! 하고 원두를 태국 수도, 방콕에 먼저 가지고 가요. 근데 이게 웬일? 방콕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저렴하고 질이 떨어지는 로부스타(Robusta)가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아라비카의 매력을 잘 몰랐어요.
사업가는 빠르게 피봇팅 해 싱가포르의 문을 두들기죠. 싱가포르는 치앙마이 아라비카 원두를 인정해 주고 사업가는 첫 6톤을 Nestle 기업에 판매합니다. 치앙마이 아라비카 원두가 드디어 빛을 본 거죠.
시장은 그 이후 들쑥날쑥 성장하다 1998-99년 Amazing Thailand라는 국가 홍보로 태국 관광 시장과 연관된 내수 커피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을 해요.
파트 2에서는 치앙마이의 현재 커피 르네상스 관해 설명해 드릴게요!